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던 건설업계가 '미분양 물량' 앞에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집값 폭락과 고금리 여파로 국민들이 내 집 마련을 포기해 분양 시장이 악화되자 건설업계에서 정부가 국민의 혈세로 미분양 물량을 매입해 달라고 나선 것이다.
특히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을 맡은 대우건설의 모회사 중흥그룹 정원주 부회장은 정부를 향한 구애의 손짓을 보내며 신년을 맞이했다. 정원주 부회장은 정부 대책으로 '환매조건부 미분양주택 매입' '미분양주택 취득자에 대한 세제 지원' '주택업체 보유 미분양주택 주택담보대출 허용' 등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최근에는 현재 분양가로는 거의 이익이 나지 않아 공급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노골적으로 미분양 물량 매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건설업계를 향해 어느 때보다 단호한 선 긋기에 나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8년 국내 주택경기 호황으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어차피 사이클은 타는 것"이라며 할인 분양, 해외 건설 추진 등 기업이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자잿값 인상 등으로 시장경제에 따라 건설사가 분양가를 인상하듯, 고분양가로 발생한 미분양 물량은 분양가를 조정하라는 것이다. 시장 경쟁에서 도태된 미분양 물량을 정부가 떠안을 이유가 없을뿐더러 수요가 있는 곳에 고품질 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정책과도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
일부 업체들이 부실 경영을 드러내며 보채는 와중에도 미분양 '제로(0)'를 달성한 건설사는 재빠르게 경영 안전성 홍보에 나섰다. 수도권에서 분양에 참패하자 할인 분양에 돌입한 건설사도 나왔다.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흥정에 나서기 전에 기업의 부실한 도덕성을 스스로 철저히 검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