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명의 직장인이 건물과 거리를 채우며 월급을 벌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 위에서, 직장 내에 자기가 앉아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얻었을 때 부모님은 비로소 내 자식이 사회인이 됐다며 보람을 느낀다.
현장으로 가야 하는 업의 특성상 여러 출입처를 매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기자실이 있는 곳에서는 남는 자리에 앉아 일한다. 기자실이 있으면 다행이다.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이동하는 버스 안이나 길거리 벤치 등 자리가 있을 때마다 노트북PC를 켜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도 간부의 책상은 반드시 마련한다. 단순히 별도 자리가 아니라 그 간부가 회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회사의 배려다.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언론사 편집국 사무공간은 부서장의 책상을 중심으로 기자들이 일하는 좌석 공간이 마련된다.
지난 8일 찾아간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판교 글로벌 R&D(연구개발) 센터(GRC).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율근무 공간이라는 모습을 목격했다. 자유로움 속에서 그에 맞춘 규칙이 지켜지고 있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혁신을 통한 창의성을 불러일으키고 직급‧세대 간 소통을 위한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바꾸기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직원들과 같은 자율근무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임원들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HD현대뿐만 아니라 현대제철 등 판교에 새 사옥을 마련한 기업에선 당연한 문화란다.
공감은 한다. 다만,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짧게는 15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한 직장 또는 업계에 종사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벽으로 가려진 지정석에 앉아 있는 선배 임원 사무실 옆 칸막이로 가로막힌 자신의 지정석 책상에서 일했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임원 타이틀을 달면 높은 연봉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회사로부터 희생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다. 구세대 선배처럼은 아니더라도 지금 임원에게도 회사에서 위상에 맞는 배려를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작지만, 자신만의 지정 공간을 내주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과거 방식으로 일을 해왔다고 해도 그들의 젊은 시절 또는 현재의 성과는 충분히 창의적이다. 이전에 익숙했던 그들에게 지금의 자율 좌석제는 또 다른 스트레스다. 판교가 아무리 좋아도 기존 사무실을 지키겠다는 임원이 많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임원은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는 웃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회사의 진짜 인재는 임원이다. 이들 가운데 전 임직원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가 나온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임원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 MZ세대만을 위한 극단적 수평 문화를 임원에게 무조건 강요해선 안 된다. 임원을 섭섭하게 해선 안 된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