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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우린 모두 같은 민족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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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우린 모두 같은 민족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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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필자가 취직할 때만 해도 ‘구직난’ 뉴스가 판을 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구인난’ 뉴스만 귀가 따갑게 들려온다. 실제로도 경험했던 조직에서 또래를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느껴졌는데, 다들 어디 갔나 했더니 동갑내기들은 죄다 스우파(스트리트우먼파이터)에 나오고 있더라.

‘구인난’이라는 키워드와 바늘과 실처럼 따라붙는 것이 ‘MZ’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MZ라는 표현도, 매해 다양한 기관에서 내보내는 통계자료 앞에서도 갸우뚱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자료에서는 MZ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장’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자료에서는 ‘돈’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자료에서는 ‘워라밸’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MZ가 ‘제 할 말을 되바라지게 하는 세대’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가장 고맥락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소위 가장 눈치를 많이 보는 세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뒷목을 잡게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당신이 느끼기에 그들은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는가?

현존하는 대다수 조직들은 생존과 안전의 욕구를 기반으로 설계되고 성장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무려 1990년대의 한 뉴스 장면 속, 한 구직자는 채용 게시판 앞에서 어디에 가고 싶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없어요. 공고 나는 대로 넣어보는 거죠”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의 표정에서는 대단한 좌절감도, 야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지극히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한다는 온도이다. 그들을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 것에 가까웠던 건 아닐까. 그들이라고 해서 자아실현의 욕구가 없었을까. 필자가 이해하는 이른바 윗세대는 전쟁과 산업화, 경제 위기로 인한 불안함 속에서 나의 삶과 가정을 ‘책임’지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만 했던 세대이다.
요즘 세대에 관한 분석 중에 가장 와닿는 것을 나열해 보자면,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고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케이스가 이전보다 늘어났다. 동네 친구들과 흙만 가지고도 창의적으로 놀 기회보다는 혼자, 주어진 가상의 공간에서 관계를 맺는 상황이 늘어났다. 교육 방식이 성숙하는 과도기에 놓여, 위계에 대한 유교적 순응과 동시에 자기표현에 대한 서구식 교육 방식이 혼재하며 소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라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미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이 된 세대이기도 하다. 여기서 적응했다는 것은 윗세대가 겪은 것과는 사뭇 다른 불확실함과 불안함에 익숙해졌다는 뜻이지,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어쩌면 이토록 다른 우리도 결국 같은 민족인 건 아닐까? 어쩌면 물과 기름을 섞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너도 참 힘들었겠다”는 이 한마디이지 않을까. 두 세대의 공통점은 원인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각 세대가 당면한 ‘불안함’을 이겨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안함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어디 있겠냐마는 두 세대가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선택한 이 방식의 간극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윗세대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즉 그 너머의 욕구는 꾹꾹 참는 방식을 선택했고 요즘 세대는 어차피 불확실한 세상, 차라리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다’는 방식을 선택해온 것이다.

어쩌면 요즘 세대는 윗세대에게 그들만의 아픔, 자신이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를 자꾸만 상기시켜 주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머리에서 시키는 것처럼 쿨하게 “그래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나도 사실은 원합니다”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요즘 세대는 윗세대가 만든 세상이라는 원망에 갇힌 나머지 “당신도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지요? 참 당황스럽겠어요”라는 말을 떠올리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지고서 각자의 아픔과 원망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관점으로는, 여전히 우리가 회사라는 곳에서 이러한 발견을 할 수만 있다면 아직은 건강한, 그리고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인간다운 곳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은 회사라는 항아리 속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숙성을 통한 성숙에서 가능한 것일 게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관찰과 이해의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솔직함이지 않을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 거야가 아닌. “나는 이러한 경험을 했어서, 이러한 생각을 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나도 동의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서 이러한 반대의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 초년생을 잡고 싶다면, 그들이 당신이 해온 이러한 인간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면, 딱 한 가지에 대해서만 먼저 손 내밀어 주시길 부탁하고 싶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당신이 혼자 끓여온 귀한 마음의 수프를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의 시작부터 끝까지, 수프 하나를 완성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라는 걸.
그들은 당신의 취약점을 원한다. 그들은 당신도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모두 안전해지고 싶다.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