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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회의라는 현상, 리더십이라는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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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회의라는 현상, 리더십이라는 본질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이미지 확대보기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작년 말 출장이 많아 한창 분주했던 시기가 있었다. 의뢰받은 내용은 급성장하고 있는 한 조직의 리더들 회의를 모니터링하고 코칭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발견되었기에 이 리더들을 특정했을까. 의뢰한 담당자는 당시 전사적으로 진행된 조직문화와 리더십 진단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은 리더들을 선별했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수많은 진단과 통계 데이터는 때때로 사실과는 꽤 먼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 것 같다.

우리는 각 리더가 주관하는 정례회의를 관찰한 뒤, 리더와 참여자들을 각각 인터뷰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실 왜 이 리더들이 진단에서 낮게 평가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성원과 충분한 라포와 신뢰도가 형성돼 있었고, 현 조직의 상황상 어쩔 수 없는 부분 역시 산재했다. 우리가 가진 회의에 대한 철학은 첫째, 회의는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개선돼야 한다는 점과 둘째, 회의에서는 명확한 의제를 토대로 회의 이후에 해야 하는 행동과 계획들이 명확히 합의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례회의는 가급적 양을 줄이자는 제언을 빼놓지 않고 한다지만, 해당 조직은 정례회의가 지닌 의미와 가치가 너무도 중요했던 터라 우리는 이 조직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진심을 들였다.
우리가 기어코 발견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리더들이 회의에서 느끼는 불만이었다. 우리는 모든 리더에게 이 회의가 더 가치 있는 시간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모든 리더가 공통적으로 회의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현재 상황을 보고하기에 급급하고, 그것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유가 없이 수습하는 데 바쁜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실로 회의에서 리더들은 ‘왜’로 시작하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구성원 대부분은 이 질문을 받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다소 엄숙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쌓여온 경험들이 한몫했겠지만, 제3자가 듣기에 그 질문 속에 어떠한 공격도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도 구성원들은 정수리를 보임으로써 방어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온 정례회의(라 쓰고 ‘보고’라 읽는)의 문제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조직은 주간회의, 위클리미팅, WIP(Work in Progress) 미팅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한 주간 한 일과 다음 한 주간 할 일들에 대한 나열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해왔을 것이다. 문서적 포맷과 회의적 포맷은 너무나도 유사해서 사실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이러한 포맷 자체에는 대부분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그리고 보고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처리해온 일들과 관련해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으며, 이 상황에 대해 다음 주에는 이렇게 대응하겠다며 리더를 안심시키는 것으로 도리를 다하지만, 리더 입장에서는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 것 역시 조직을 불문하고 공통 사항이지 않을까 하는 편협한 생각도 해본다.
똑똑한 리더들은 질문한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 같으냐고. 무엇이 문제인 것 같으냐고.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문제라는 관점에 갇힌 구성원들은 이런 질문 앞에서 답답함과 죄책감을 느끼는 것 역시 매한가지일 터. 어쩌면 우리는 매일 마주하는 현상들을 문제라고 여기며 당장의 해결책을 찾는 데 너무도 급급하지는 않았을까. 시간이 없어서, 식견이 부족해서라는 이유로 반복되는 상황을 처리하는 대처 능력을 키우는 것에만 너무 몰입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왜 이런 회의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으냐고. 무엇이 진짜 문제인 것 같으냐고. 그리하여 발견한 것은 우리 모두는 문제를 현상으로만 바라보고 본질을 사유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사실이었다. 때때로 그런 현상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나머지 문제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도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현상 너머에 있다는 확신이 든다.

우리는 회의라는 현상을 관찰하며 리더들과 함께 본질을 탐구했고, 비로소 진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리더들이 정례회의를 자신들의 부족한 정보를 채우기 위한 시간으로만 취급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회의가 진짜 가치를 회복하려면 회의의 주관자뿐만 아니라 모든 참여자에게도 의미 있고 기꺼이 투자할 만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리더들은 보고라는 습관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둘째는, 회의라는 기회가 어쩌면 리더들이 문제를 현상과 본질로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참여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이었다. 리더의 진정한 가치는 팔로어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관점으로 조직을, 일을 바라볼 수 있음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우리는 ‘왜요?’라는 질문이 아닌 조금 더 다정한 방법으로 구성원들의 관점과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고민했다. 셋째는, 리더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분 역시 최상위 리더로부터 답습돼 내려왔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회의에서 어떤 문제가 보인다면 그 조직의 최고 리더의 회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과감히 최상위 리더의 회의부터 클리닉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라고 제안했다.

결국, 회의라는 현상적 문제에는 리더의 인식, 리더의 역할, 리더의 방식이라는 본질적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 셈이다. 물론 모든 회의의 진짜 문제가 리더십만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회의는 조직의 진짜 문제를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창이 아닐까? 더 나은 조직에 대해 고민하는, 더 가치 있게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물론 본질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는 분명 일과 조직에 대한 애정과 몰입으로부터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현상을 바꿈으로써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더 많은 회의가 우리 조직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피부의 기능을 되찾기를. 우리의 애정 어린 관찰을 통해 속까지 꽉 찬 회의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