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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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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이다. “그럼 무엇으로 살지?” 이 질문에 내 친구가 “사랑으로”라고 멋지게 답했다. “사랑으로?”라고 내가 되묻자, 그 친구는 의외로 동물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떤 사람이 개를 옥상에서 키웠어. 주인이 밥은 주지만, 개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 개도 주인의 사랑이 있어야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명답이었다. 한마디로 개도 밥만 먹고 살지 않고 사랑으로 산다는 말이다.

나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운다. 서너 시간 외출할 때면 맛있는 간식을 장난감 안에 넣어, 재미있게 먹으면서 혼자 놀게 둔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강아지는 시계를 볼 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에 돌아오면 반갑다고 맞이하는 강아지의 반응 강도가 외출 시간에 비례했다. 외출 시간이 짧으면 반응이 금방 풀어졌지만, 외출 시간이 길면 길수록 반갑다는 반응이 거칠고 오래갔다. 마치 “왜 이제야 오는 거야!” 하고 화내는 것처럼.
놀랍게도 게리 채프먼의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육체적인 접촉)는 사람 사이에는 물론이고, 사람과 강아지 사이에도 적용된다. 물론 사람은 언어로, 강아지는 비언어로 소통하지만…. 그런데 강아지에 대한 사랑만 그럴까?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 팔순 할아버지와 마흔 살 소의 사랑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로 소 먹일 풀을 베러 매일 산에 올랐고, 서 있기조차 힘든 소는 엄청난 나뭇짐을 묵묵히 날랐다.

그렇다. 답은 사랑이다. 사람 사이의 사랑은 물론이고,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사랑이 있어야 잘 살 수 있다. 동물도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다. 이러한 동물에 대한 사랑의 결핍이나 부족 문제를 ‘재미없게’ 공리주의로 푼 사람이 벤담과 싱어이다. 벤담의 주장은 “모든 사람은 ‘하나’로 셈해야 한다”이고, 싱어는 벤담의 생각을 동물로 확대하여 종에 대한 차별, 즉 동물 차별을 반대했다. 동물 해방을 위한 이러한 생각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을 모르는 동물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동물 사랑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공리주의다. 앞에서 벤담과 싱어가 주장한 그 공리주의 말이다. 물론 벤담과 싱어는 “우리 공리주의는 달라!”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공리주의는 공리주의이다. 이른바 ‘비용-편익 분석’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편에서 동물을 기르는 비용을 최소로 줄이고, 편익을 최대로 얻어 인간만 갖는 것 - 이것이 공리주의의 기본이다. 공리주의가 걸림돌일 수밖에 없는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동물에 대한 사랑이 없거나 적다는 데 있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면서 ‘수단과 목적의 원리’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성주의자 칸트의 주장에는 사랑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고, 심지어 이 원리에서 동물을 아예 배제하기까지 했다. 아마 칸트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시대를 방문한다면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 표적이 되어 인터넷을 달굴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결론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듯이, 동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물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사랑을 원한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 사상, 종교, 문화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그 사랑이 사람만 사랑한다면 반쪽짜리이며, 온전한 사랑은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 그렇다. “사람도 동물도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