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19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두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때는 하루 네 시간 넘게 자본 적이 없다. 불고기를 3인분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식가인 내가 식욕이 떨어져서 하루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였다. 그해에 체중이 10㎏ 이상 줄었다.
미국·일본에서 회의를 갖고 그 나라를 둘러보면서 나는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기 위해 우선 회장인 나부터 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나의 결심을 1993년 6월 7일 ‘나부터 변해야 한다’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언하고 삼성 신경영을 출범시켰다.
이 글 속에 들어있는 두 개의 연도, 1992년과 1993년을 2022년과 2023년으로 바꿔보고 읽어보자. 30년 전의 삼성과 지금 삼성이 겪고 있는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느낀다는 건 기자만의 비약일까.
삼성은 신경영을 선포한 1993년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이를 원동력으로 신경영을 통해 삼성은 △거대 조직이 스피디하고 유연한 조직이 됐고 △비핵심사업으로의 다각화, 단순 제조 중심의 원가우위전략에서 업종‧제품의 전문화를 통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R&D(연구·개발), 디자인 역량을 키워 프리미엄 브랜드를 키워내 차별화와 고객 중심의 전략을 구사했으며 △일본식 경영시스템을 미국식으로 전환했다.
반도체 세계 1위로 얻은 혁신 정신으로 디스플레이 패널, 휴대전화, TV 등 1등 제품을 연이어 배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삼성은 ‘21세기 초일류 기업’으로의 성장이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
1등을 이어가려면 보이는 추격자는 물론 보이지 않는 경쟁자의 강력한 추격에도 앞서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초격차(超隔差)’라고 부른다. 최근 삼성 내에서의 가장 큰 이슈다.
그런데 초격차를 추구하는 방법론이 초일류 달성 과정에 머물러 있다는 게 걱정이다. 1등에 올라서는 혁신과 1등을 유지하는 혁신은 다른 차원인데 삼성은 ‘익숙한 혁신’에만 매달리며 바뀌지 않는 또 다른 조직의 관료제가 굳어졌고, 회사 간 부서 간 이기주의는 ‘사일로 효과’라는 단어로 더욱 심화하고 있다. 과거의 문제가 다시 대두하고 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이 언급했듯이 지금은 삼성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성과 평가를 통한 새로운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지난해 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했다. 아직은 삼성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신경영 선포 30주년을 맞는다. 마침 주력 기업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황 급락으로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불황일 때 진정한 혁신이 발휘된다. 어떤 식으로든지 “다시, 나 자신부터 양보하고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이재용의 뉴 삼성’ 메시지가 나와야 할 때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