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 빠듯해 분주한 상황에서 삼성카드사로부터 카드값이 연체됐다는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은 장소는 버스 안이었다. AI 상담사는 대뜸 "안녕하세요, 삼성카드 AI 상담사입니다. 고객님 본인 맞으십니까?" 난 안 그래도 집중해야 하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그것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혼자 대답을 하려고 하니 소위 '쪽 팔렸다'. 하지만 이내 남을 의식하지 말자고 다짐한 후 수화기를 받았다. "네, 맞아요" 하니 AI는 "고객님,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OOO 고객님 본인 맞으십니까?", 난 "맞아요, 맞아요" 답하며 밀려오는 짜증을 다스렸다. AI는 한참 대답이 없더니 이내 "이번 달 결제금액 OO만원 입금이 확인되지 않아 전화 드렸습니다. 오늘 입금 가능하신가요?" 물었다. "네" 하고 대답하자, AI는 "그럼 자동이체 계좌에 넣어주실 건가요? 아니면 가상계좌를 보내 드릴까요?"라고 대뜸 묻는다. 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일단, 말을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AI는 "고객님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그럼 자동이체로 입금하시겠습니까?" 거듭 묻는다. 재촉하는 듯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하며 말을 흐렸다.
순간, 통화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올바른 판단이 나오기도 쉽지 않은 것 같은데…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9초 정도가 흘렀다.
내 상황과 의도를 눈치챘는지 AI는 "죄송합니다. 고객님 정확히 확인되지를 않아 상담이 어렵습니다. 통화 가능하실 때 고객센터 1688-1997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하며 말을 맺는다. 전화가 순간 끊겼다. "내가 아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더라?…"
이 모든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데 걸린 시간은 딱 1분 17초. 짧지만 사실 내겐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1분 남짓, 이 시간 동안 나는 카드사가 원하는 정보를 듣고자 나름대로 분주한 업무를 잠시 접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람은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전환을 하려면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다. 하지만 AI는 인간이 아니다. 내 상황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AI와의 대화는 소위 ‘소통’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준비된 기계적 멘트만 ‘툭툭’ 쏟아내고 난 받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일정한 호흡의 '주고받음'과 이의 '반복'이다. 내 복잡한 상황이나 생각 등을 알 수 없는 AI는 ‘자꾸 안 들린다’ ‘다시 말하라’는 메시지부터 던진다. "AI님, 제가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니어서요"라고 말하고 싶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해 못 받는 건 둘째다. 이 서비스는 처음에 "자동이체 계좌에 넣어주시겠습니까? 가상계좌를 보내 드릴까요?" 했던 질문에 내가 잠시 대답을 미루자 "고객님,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곧바로 "그럼 자동이체로 입금하시겠습니까?"로 바꿨다.
다시 말해, AI는 두 가지 상황에 대한 선택권을 내게 주는 것 같더니 이내 자동이체 쪽으로 몰고 갔다. AI는 왜 두 가지 선택지를 던져놓고 하나는 뺐을까? 이 상황에서 정신을 차려, "아까 가상계좌 말했잖아요. 그걸로 해주세요"라고 AI에게 자신 있게 따져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결국, AI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냥 자동이체 하세요"였던 것 같다. 아무리 궁금해도 처음부터 자동이체 하라고 하지, 왜 가상계좌를 언급하느냐고 따지고 싶어도 AI에게 따질 수가 없다.
AI는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내 머릿속에 정보만 넣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들 AI는 "확인되지 않아 상담이 어렵고, 고객센터로 연락하라"는 메시지로 ‘도돌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