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이와 관련된 소식이 쏟아져 나오자 영업 현장에서는 자기부담금 신설 소문을 악용한 절판 마케팅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운전자보험 절판 마케팅에 대해 취재를 이어나가는 동안 들을 수 있던 이야기들은 조금 결이 다른 것이었다.
운전자보험은 최근 몇 년간 손보사들의 효자상품으로 떠오른 상품이다. 보험료도 통상 1만원대로 저렴한데다 민식이법, 도로교통법 개정 등 법적 제도 변경 등의 이슈로 판매하기도 쉬워져 매출이 급등했다.
운전자보험에서 재미를 본 손보사들은 점차 판매 경쟁이 붙으면서 보장을 확대한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몇몇 사람은 미친 담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예의 담보가 운전자보험의 핵심 보장 중 하나인 교통사고처리지원금(교사처)과 변호사 선임비용이다.
교사처 보장 한도는 과거 1000만~3000만원 수준이었으나 판매 경쟁이 과열되며 최근에는 한도가 2억원까지 상승했다. 변호사 선임비용 담보의 경우도 한때 1억원까지 한도가 치솟았다.
오랜 기간 동안 일정 보장금액을 유지해 왔으나 최근 몇 년 새를 기점으로 한도가 과도하게 올랐다는 게 취재원들의 설명이었다.
그들은 운전자보험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발생해서 내가 피해자가 됐을 때를 가정한다면 가해자의 잘못 정도가 아니라 가해자가 어떤 보험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내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리모델링된 최신 운전자보험을 가지고 있으면 유가족이 합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데 예전 보험을 갖고 있다면 그만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보험사들의 경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최신 보험에 가입하고 나면 합의금 기준 금액이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보험사들이 향후 손해율 등을 이유로 현재 상품 판매를 중단한다면 이전 보험에 가입했던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보험이 사법 영역에서 처벌을 완화시킨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자신의 중과실로 사망 사고를 냈으면 마땅히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왜 한도를 높여서 방패막이가 되어주느냐는 것이었다.
한도가 과도하게 상향되면서 보험 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언론에 소개된 사례처럼 변호사들이 변호사 수임비를 최대한 청구하고 페이백을 하는 경우가 그 예다. 보험사기를 모의해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많은 금액의 합의금을 편취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
보험사들은 이에 대해 과도한 해석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실손보험의 예를 들며 이 우려가 기우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보험사들이 손해율이 없다시피 하니까 한도를 올려놨지만 일단 그러한 상품이 있게 되면 보험사기 수요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실손보험이 그 적절한 예라는 설명이다.
실손보험이 없을 때는 그런 일이 없다가 상품이 출시되고 다 보장해주기 시작하니까 의사들이 실손보험 유무를 묻고 과도한 치료를 해서 수가가 엄청 뛰어오른 현 상황을 말하는 듯했다.
그 결과 손해율이 급등하면서 보험사들은 현재 실손보험을 놓고 의료계와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취재 말미에 한 취재원이 물었다.
“기자님. 절판 마케팅을 안 한다고 해서 고객들한테 이 운전자보험을 권하지 않는 게 맞는 건가요?”
절판 마케팅을 문제 삼기 전에 영업 현장에서 리모델링한 운전자보험을 권할 수밖에 없는 이유.
또, 현 운전자보험이 갖고 있는 문제와 상품을 설계한 보험사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더불어 해당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금융당국에 대해서도.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우려들이 기우이기만 한 걸까.
운전자보험 판매가 갈수록 과열되고 있는 지금, 보험사들의 단기성과주의, 팔고 보자식 판매 관행에 대해서도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손규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bal4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