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은 “고객 자산의 관리·운용 과정에서 터진 위법 행위를 단순히 실무자의 일탈이나 불가피한 영업 관행으로만 돌리지 마라”며 “이는 전적으로 CEO 책임이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다. 금감원은 “최근 증권사 간 ‘채권 돌려막기’가 성행 중”이라며 “불공정 행위에 대해선 뿌리 뽑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실제로 증권가에선 채권형 랩·특정금전신탁(신탁) 등을 운용하면서 자전 거래나 파킹 거래 등이 암묵적 동의 아래 횡행했다. 금감원은 “이는 시장 변동성과 맞물려 자금시장에서 잠재적 불안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관행화된 ‘채권 돌려막기’도 완전히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KB증권 등 일부 증권사들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랩·신탁 상품에서 대규모 손실을 봤다. 이들은 환매(고객 투자금을 중도에 돌려주는 것) 중단 사태를 해결하고자 편법을 도입했다. 랩·신탁에 투자한 법인 고객의 손실을 보전코자 다른 증권사와 편법으로 자전 거래도 벌였다. 하지만 이것이 적발돼 금감원 조사를 받았다. 앞서 SK증권도 만기가 짧은 채권형 신탁을 팔면서 모은 자금으로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불일치 운용에 나섰다가 사고를 냈다.
하지만 KB증권에선 "계약 기간보다 긴 자산으로 운용하는 미스매칭 운용이 불법은 아니다"며 “상품 가입 시 만기 미스매칭 운용 전략과 관련, 사전에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고객설명서에도 계약 기간보다 잔존 만기가 긴 자산에 편입돼 운용될 수 있다고 고지했다. KB증권 측은 "손실을 덮을 목적으로 타 증권사와 거래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금리 급등에 따른 CP시장 경색으로 고객들의 2차 피해가 우려되면서 지난해 11~12월부터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그런데 연말 회계 결산과정에서 CP를 장부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 손실로 인식하게 됐다”며 “시기적으로도 손실을 덮거나 고객 손실을 받아줄 목적 거래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 같은 운용방식을 곱게 보지 않는다. 금감원은 “이는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엄연한 불법적 수익 보전으로 특정 투자자 이익을 해치면서 법인 투자자 손실을 보전해준 행위는 명백한 편법이자 위법이다”고 지적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증권사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 관행의 핵심은 일부 증권사가 고객의 랩‧신탁 자산을 운용하면서 특정 투자자 이익을 해쳤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금감원은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을 CEO의 관심과 책임의 영역으로 본다. 단연히, 불법 행위에 대해선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고 본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의 고객 자산 관리‧운용 관련 위법을 더 이상 실무자의 일탈이나 불가피한 영업 관행으로 핑계 대지 말라"고 주문한다. 특히,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관리, 감사부서 등 어느 곳에서도 위법 행위를 거르지 못했다는 것은 내부 통제가 전사 차원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이는 최종 책임자인 최고 경영진의 일탈이란 것이다.
최근 들어 유독, 증권가에선 '라덕연 사태' 등 사건·사고들이 이어지고 있다. 금투업계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많다. 금융투자업, 즉 자본시장은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산업이다. 신뢰를 잃으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금감원의 '증권사 길들이기'도 증권사의 잃어가는 신뢰 회복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김희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euyil@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