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노트7 사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당시의 언론 보도를 참고하면 되므로 이 자리에선 자세한 내용을 생략하겠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이 일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은 당시 갤노트7 개발의 총책이었던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현 삼성전자 고문) 덕분이었다.
기자가 궁금했던 것은 갤노트7의 탄생과 단종, 그리고 사고 원인을 찾아내서 갤노트8을 내놓기까지의 과정 동안 고 사장 개인의 심정이 어땠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2017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갤노트8 언팩에서 그를 만났지만 그때는 질문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른 뒤 고 사장도 기자도 그때의 사건을 반추해본 다음 더 객관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그를 만났을 때 단 한마디만 물어보고 싶어 마음속에 준비는 늘 해뒀다. “그때의 시간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사장이 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일이라 처음에는 아찔하기만 했다. 주변에서는 사업의 위기라고 했다. 해외에서는 'crisis(위기)'라고 했다. 그 당시 잠도 잘 수 없었고 혼자 사무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강력한 리더십을 요하는 삼성 최고 임원에 올랐지만, 고 사장도 사람이었고, 사람이라면 느끼는 같은 좌절감을 겪었다.
하지만 좌절할 시간에 머물 틈이 없었다.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었다. "정말 힘든 과정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심신이 무너지는 경험은 없었다. 사장인 제가 마지막 의사결정자이고, 여기서 제가 무너지면 십수만의 임직원을 실망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진정 두려운 것은 그것이었다. 부끄러움을 안은 채 무너질 수는 없어서 저는 마음속으로 ‘투명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지고 회사를 떠난다’라는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었다."
고 사장은 ‘배수진을 친다’는 것을 ‘죽을 각오로 ‘이기고’ 또 ‘살려고’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수진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친다는 것이다.
갤노트7 사태는 놀랍게도 삼성전자 전 임직원이 그 어떤 때도 볼 수 없었던 단합력을 보여준 덕분에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임직원 게시판에는 자기반성과 함께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글들이 올라왔고, 고 사장 등 CEO도 반드시 직원들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글로벌 기업들조차 놀라워했을 정도였다. 고 사장은 "사장으로서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 배수진을 쳤고,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해결을 위해 매달렸다"고 설명했다.
고 사장은 갤노트7 사태를 '시련이자 위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위기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변수가 다수일 때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노트7 사태는 3~4주가 지나면서 힘은 들어도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변수들로 정의되어 갔다. 그러니 위기가 아니라 극복 가능한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묘안이나 해법은 없다. 단 하나의 방법은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것, 어떻게든 돌파해내는 것뿐"이라며 "배수진을 치고 죽을 각오로 덤벼드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도 없다. 그리고 그 배수진을 칠 때는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노트7 사태 때 우리 임직원이 모두 하나가 되었던 것처럼"이라고 했다.
갤노트7 사태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한마음’으로 마주하면 어떠한 시련도 해결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