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현대 번아웃의 가장 나쁜 문제점이다. 생산할 능력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생산성을 유지한다. 심지어 높은 생산성을 가진 사람도 있다. 마치 알코올에 중독됐으나 삶을 잘 유지하는 듯 보이는 '고기능 알코올중독자'처럼 말이다. 자신을 몰아붙인다. 힘들지만 결과물이 나왔으니 '나는 괜찮다'고 되뇐다. 번아웃이 상장 같기도 하다. 힙한 '허슬러(Hustler)'인 것 같다. 미디어에 나오는 직장인처럼 시크하려면 모름지기 야근과 카페인 중독 그리고 번아웃에 조금 시달려야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그렇다면 조직 내 개인이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우선, 안전한 베이스캠프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 사회생활용 가면을 벗고 이야기할 상대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번아웃을 증폭시키는 가짜 베이스캠프가 있다. 부정적인 정서를 극대화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듯하나 조직에 대한 불만을 과장해 여론을 만든다든지, 결국 험담으로 귀결되도록 대화를 인도하는 사람, 결론적으로 같이 있으면 마이너스의 정서를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 또한 번아웃을 만들어낸 조직문화에 n분의 1 책임이 있으며, 앞으로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를 쓴 저자 안주연은 번아웃의 '자격'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돌아보면 번아웃으로 인한 일시적 인지능력 저하를 겪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자신의 나이를 탓했다. '내가 나이 드니 예전 같지가 않다'고 하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며 해봤을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존중하자.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하릴없이 졸고만 있는 고양이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무용한 나를 존중하자. 내가 있으니 일도 있는 것이고, 내가 존엄하니 내가 하는 일도 존엄해진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