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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산업, 노병들이 물러나야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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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산업, 노병들이 물러나야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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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송재경 같은 사람들은 이제 은퇴해야 해요. 여전히 현업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니 한국 게임산업이 발전이 없는 겁니다."

업체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게임업계 관계자가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아니, 국내 게임산업에 한 줄기 획을 두껍게 그어 내린 이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김택진은 엔씨소프트를 설립하며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에 공헌했으며 송재경은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인데 말이다.
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난 뒤 계속 그런 게임들만 만들게 되고 그것이 사풍(社風)이 돼 신진 PD들도 그에 맞춘 게임들만 개발하는 풍토가 만연하다고. 그렇기 때문에 돈 되는 게임만 만들고 대부분 설정이 비슷비슷한데도 20년째 그와 같은 게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 겪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자사 신작 게임이 출시된 직후 이를 개발한 한 직원과 얘기하는 자리에서 "재밌어?"라고 물어보니 그 직원이 "그래픽이 훌륭하고 BM(비즈니스 모델)도 잘 짜여져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 관계자는 "재밌단 얘기가 먼저 나오지 않으니 재미없겠구나"라고 말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반박할 수 없었다. 국내 게임은 장르 다변화, 새로운 모험을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다. 물론 수백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되고 수 년간의 시간이 걸리는 게임이 성공하지 않으면 그 타격이 엄청나기에 약속된 성공 공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게임 제작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때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밀어도 윗사람이 종종 거절한다. 실패에 따른 책임감이 무거워 신입 PD들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바꾸다 보면 기존 게임들과 유사해진다.

게임은 언제나 플레이를 통해 게이머들이 '새로운 모험'을 하게 만들지만 정작 게임업체는 스스로 모험심을 갖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게임사들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현재 앱스토어·구글플레이 같은 앱 마켓에서 인기 게임을 검색하면 절반 이상이 중국 게임으로 채워졌다. 그렇다고 그 게임들이 재미없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해외 유명 게임을 모방한 작품이 다수 있지만 게이머들은 그것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신생 게임사는 이해가 간다. 그들에게 '한 번의 실패'는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대형 게임사들은 다르다. 이미 충분히 성장했고 몇 번의 도전과 실패를 겪을 만큼 맷집도, 체력도 갖췄다. 후대를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서 도전적인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 PD의 탄생이 절실하다. 그 때문에 엔씨에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젝트G(가칭)'를 만드는 서민석 PD, '블루 아카이브'를 만든 김용하 PD, '그랜드크로스: 에이지오브타이탄'의 강민석 PD, '데이브 더 다이버'의 황재호 PD 같은 이들의 등장은 기자로서도, 한 명의 게이머로서도 무척 기쁘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닌텐도의 콘솔 '스위치'는 출시 7년차 노병이다. 최신 스마트폰 게임과 비교해도 그래픽 등에서 성능이 한참 떨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재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올해 출시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은 출시 3일 만에 1000만 장 이상 판매됐고 '마리오' 시리즈의 인기도 굳건하다. 닌텐도의 정신적 지주인 야마우치 히로시 명예회장은 '게임은 재미가 가장 중요하고 그래픽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닌텐도 게임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얼마 전 한 국내 대형 게임사 출신 직원이 기자에게 "콘솔 대작이 아무리 잘 팔려도 MMORPG 며칠이면 그 수익 충분히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익만을 좇고 모험을 하지 않는 이 같은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머잖아 국내 게임시장은 중국에 잠식당할 것이 뻔하다.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