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게임업계 관계자가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아니, 국내 게임산업에 한 줄기 획을 두껍게 그어 내린 이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김택진은 엔씨소프트를 설립하며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에 공헌했으며 송재경은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인데 말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 겪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자사 신작 게임이 출시된 직후 이를 개발한 한 직원과 얘기하는 자리에서 "재밌어?"라고 물어보니 그 직원이 "그래픽이 훌륭하고 BM(비즈니스 모델)도 잘 짜여져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 관계자는 "재밌단 얘기가 먼저 나오지 않으니 재미없겠구나"라고 말했다.
게임은 언제나 플레이를 통해 게이머들이 '새로운 모험'을 하게 만들지만 정작 게임업체는 스스로 모험심을 갖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게임사들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현재 앱스토어·구글플레이 같은 앱 마켓에서 인기 게임을 검색하면 절반 이상이 중국 게임으로 채워졌다. 그렇다고 그 게임들이 재미없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해외 유명 게임을 모방한 작품이 다수 있지만 게이머들은 그것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신생 게임사는 이해가 간다. 그들에게 '한 번의 실패'는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대형 게임사들은 다르다. 이미 충분히 성장했고 몇 번의 도전과 실패를 겪을 만큼 맷집도, 체력도 갖췄다. 후대를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서 도전적인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 PD의 탄생이 절실하다. 그 때문에 엔씨에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젝트G(가칭)'를 만드는 서민석 PD, '블루 아카이브'를 만든 김용하 PD, '그랜드크로스: 에이지오브타이탄'의 강민석 PD, '데이브 더 다이버'의 황재호 PD 같은 이들의 등장은 기자로서도, 한 명의 게이머로서도 무척 기쁘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닌텐도의 콘솔 '스위치'는 출시 7년차 노병이다. 최신 스마트폰 게임과 비교해도 그래픽 등에서 성능이 한참 떨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재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올해 출시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은 출시 3일 만에 1000만 장 이상 판매됐고 '마리오' 시리즈의 인기도 굳건하다. 닌텐도의 정신적 지주인 야마우치 히로시 명예회장은 '게임은 재미가 가장 중요하고 그래픽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닌텐도 게임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얼마 전 한 국내 대형 게임사 출신 직원이 기자에게 "콘솔 대작이 아무리 잘 팔려도 MMORPG 며칠이면 그 수익 충분히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익만을 좇고 모험을 하지 않는 이 같은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머잖아 국내 게임시장은 중국에 잠식당할 것이 뻔하다.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