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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불법사금융 키운 ‘법정 최고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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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불법사금융 키운 ‘법정 최고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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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불법 사금융 피해 상담과 신고 건수가 5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이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센터에 상담·신고된 불법 사금융 피해 건수는 6784건으로 집계됐다.

법정 최고금리는 현행 20% 제한해 있지만, 불법 사금융 피해는 이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늘고 있다. 연간기준으로 보면 2019년 5468건, 2020년 8043건, 2021년 9918건, 지난해 1만913건 등으로 증가세가 뚜렷하다. 피해는 주로 미등록 불법 대부업체 운영, 법정금리인 연이율 20%를 넘는 고금리 부과, 불법 채권추심, 불법 광고, 불법 수수료, 유사수신행위 등에 집중됐다. 사례 중에선 차주에게 연이자 3000%에서 4000%를 적용한 사례도 있었다.
차주들이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닌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게 되는 배경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는 차주들은 신용카드 발급마저 어려운 신용점수 600점 미만의 저신용자다. 신용점수 600점 미만 차주의 경우 기존 대출을 3건 이상 보유한 다중채무자가 많고, 금융활동이 증명되지 않는 ‘신파일러’(금융이력 부족자)들이다.

이들은 시중은행 대출은 기대하기 어렵고, 저축은행이나 대부업 이용을 알아봐야 하지만, 최근 2금융권에서도 대출 문턱을 높이는 추세라, 승인을 장담할 순 없다.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과 대부업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배경은 경기침체에 따른 부실화 우려 외에도 ‘대출 원가’ 맞추기가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대출을 내줄 때 단지 금리 하나만 고려하는 게 아니다. 대출 원가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인건비, 조달비용, 대손비용, 금리 등 대여섯 가지가 반영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 ‘법정 최고금리’다. 법정 최고금리는 시중은행이 아니라 서민금융기관에 직격탄을 날렸다. 대출 시장은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고소득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하는 특징을 지녔다. 저신용자가 고신용자보다 채무불이행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법정 최고금리는 이를 무시한다. 채무불이행확률이 높은 차주라 할지라도 법정 최고금리를 넘어선 이자를 적용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대출심사 결과 30%는 받아야 하는 차주인데, 그럴 수가 없으니 아예 거절해버리는 게 우리나라 서민금융의 현실이다. 금융기관이 손실을 감수하고 대출에 나설 이유는 없으니 대출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지속하는 셈이다.

법정최고금리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시급해지는 시점이다. 대부업법은 지난 2002년 10월 처음 제정해 최고금리를 66%로 결정한 이후 시행령 개정을 7차례나 거치며 현재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기간동안 우리나라 서민금융 시장은 얼마나 달라졌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여전하고 불법 사금융이 줄지도 않았다. 이게 우리나라 서민금융시장의 현실이다.

서민금융을 활성화하려면 제도권 금융기관에 재량권을 넓혀줘야 한다. 대출 발생 시 주된 비용인 조달 원가에 대한 가이드만으로도 대출금리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단순히 금리가 높으면 서민 부담이 커지니 낮춰야 한다는 일차원적인 생각만으론 서민금융을 활성화할 수 없다.

무분별한 가격 인상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기준 있는 가격 인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차주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할 만큼 ‘신용회복제도’도 잘 마련해 있다. 시장 가격까지 통제하는 건 지나치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hdtjrrud8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