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올해 38세의 인도계 벤처기업가 출신 비벡 라마스와미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난달 23일 첫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21세기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런 그를 부통령 후보 반열에 올려놓았다.
라마스와미가 혜성처럼 등장하자 미국 정치권에서 인도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자메이카계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에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82세에 취임한 뒤 건강상 문제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면 드디어 인도계 미국 대통령이 탄생한다. 영국에서는 이미 인도계 리시 수낵 총리가 집권했기에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인도계 정상이 나올 수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전에서는 라마스와미와 함께 인도계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뛰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지낸 헤일리는 부모 모두 인도 이민자다. 지난 2016년에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인도계 바비 진달 당시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출마했었다.
미국에서 인도계는 400만~4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 안팎이다. 그런 인도계가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IT 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석권한 데 이어 이제 정계 점령에 나섰다. 인도계 연방 하원의원은 현재 5명이고, 바이든 정부 내에서는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등 핵심 요직을 차지한 인도계가 150여 명에 달한다. 인도계인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마스터카드 CEO를 지냈다.
인도계 CEO는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쉽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IBM의 아르빈드 크리슈타 CEO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 외에도 스타벅스, 버라이즌, 바클레이스, 딜로이트, 페덱스, 마이크론, 어도비, 펩시콜라, 갭 등 유명 기업 CEO도 죄다 인도계가 차지했다.
포춘 500대 기업 중에서 인도계 CEO는 60명가량이다. 인구는 1%인데 기업 CEO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인디아디아스포라’라는 기관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학에 재직 중인 인도계 교수는 2만 명가량이다. 미국 병원에는 인도계 의사들이 넘쳐 난다.
미국에서 인도계의 중위 소득은 12만3700달러이다. 이는 백인을 포함해 어느 인종 그룹보다 높다. 인도계 소득은 미국 평균 가정의 2배에 이른다.
특이한 점은 인도계 대부분이 미국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포춘에 따르면 인도계 중에서 75%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인도계 주민의 51%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다. 인도 사람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주요 통로는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비자이다. 미국은 연간 이 비자를 8만5000개 발급하고 있고, 그 대부분을 인도 출신의 IT 기술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인도계가 미국에서 성공하는 이유로는 무엇보다 안정된 가정과 교육이 꼽힌다. 미국 내 이민 1세대 인도계의 94%가 이혼하지 않았다. 백인은 이 비율이 66% 정도다. 미국에서 태어난 인도계의 87%가 장기간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어느 인종 그룹보다 높은 비율이다. 25세 이상 인도계 중 대졸 이상의 학력자가 75%에 달한다. 이것 역시 최고 비율이다.
가정과 교육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인도계와 한국계는 닮았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는 줄잡아 250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인도계를 따라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 지난 13일로 출범 100일을 맞은 재외동포청은 인도계의 성공 신화를 심층 분석해 보기를 바란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