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일을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그때 그 회사를 사랑했던 걸까? 이 말은 어쩌면 나는 사랑을 사랑한 걸까, 사람을 사랑한 걸까와 비슷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건 나는 늘 사랑을 했다. 사회초년생의 사랑이란 지리멸렬하기 그지없어서 부족한 스킬과 앞서는 마음만으로 너무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관계를 버려둔 채 뛰쳐나오기도 했다. 굳이 돌이켜 보자면 나는 그 직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을 것이었기에, 나는 ‘너’라는 회사와 ‘일’이라는 사랑을 하고 싶었던거라고 이제야 고백을 해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내가 그것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는가 하면, 그것들은 대부분 차갑기 그지없는 냉혈한 같았던 기억을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직장과 연애를 한 것이 아니라 짝사랑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10년차가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철도 없지. 회사를 여러 번 바꾸어도 보며, 그 놈이 그 놈이라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나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싶다. 나 역시, 첫 직장과의 연애만큼 뜨거운 열정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조금 침착하게, 조금 뻔뻔하게 예전 같았으면 당장 ‘헤어져’를 외쳤을 순간들에 대해서, 애정 어린 안타까움을 내밀어 보게도 되었다.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나 같은 사람들이라 치부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러한 활동에 대한 참여 동기로 “우리가 좋아하는 회사를 앞으로도 계속 좋아하기 위해서”라고, “우리 회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기에 조직문화란 ‘직장’이라는 너와 ‘우리’라는 나와의 관계를 가꾸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조직’이나 ‘회사’를 연애에 빗대어 말한다면, ‘남자’나 ‘여자’와 같이 어떤 종족을 일컫는 말이 되겠고, ‘직장’이 되는 순간 ‘내 남자친구’ 혹은 ‘내 여자친구’가 되는 기분이다. 어쩌면 조직문화보다 직장문화라는 표현이 내게는 더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대상을 더는 사랑할 수 없을 때, 사랑하는 마음이 갈 곳을 잃을 때, 누구나 버림받은 것과 같은 아픔을 느낀다. 적어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직장이란, 조직이란, 하나의 유기적인 존재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사랑하고자 하고, 그것으로부터 사랑받고 싶다. 그리고 내가 회사라면 나 같은 상대가 있음에 조금은 고마운 날도, 감동을 받는 날도 있을 것만 같다. 이것은 때로는 나의 팀에게, 나의 리더에게, 회사를 대표하는 수장에게나마 생색내 보고 싶은 유치한 마음이기도 하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조직의 생존에 대한 책임에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조직이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에 동의하신다면, 구성원들에게 조직보다는 회사가, 회사보다는 직장이 될 정도의 친밀한 상대가 되는 것에 기꺼운 마음이 드신다면, 우리 조직이 조금 더 인간적이고 다정해지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 개인이 바치는 삶의 일부라는 애정을 당연시하지 말기를, 그 마음에 고마워하고, 그 씀씀이에 보답하며, 더 이상 구성원들이 직장을 대상으로 짝사랑을 하게 두지 말기를, 오히려 그들을 짝사랑해 보시기를, 우리만의 ‘직장’이라는 관계를 가꾸어 가는 데 앞장서 주시기를 부탁하고 싶다.
당신도 그러하듯, 당신의 회사와 ‘일’이라는 사랑을 하고 싶은,
당신의 회사가 나의 직장이 되고 ‘우리 회사’가 되는 관계를 맺고픈 우리를
추앙해 주기를.
우리를 사랑해주고, 우리를 응원해주고,
우리를 가끔은 우러러 봐주기를.
그래서 우리가 한 번은 가득 채워지는 직장인이 될 수 있기를.
언젠가 우리의 일터에 새로운 낭만이 깃들기를 바라 본다.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