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은 한국의 안보 현실을 일깨워 주는 ‘웨이크업 콜(wake-up call)’이다. 북한은 하마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재래식 군사력과 핵무기를 가진 나라다. 한국은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의 장사정포를 비롯한 재래식 무기에도 고스란히 노출된 한국 안보 현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한국 조야(朝野)가 이·팔 전쟁이 몰고 올 국제 질서의 변화와 경제적 파장, 국가 안보 정책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됐다. 이런 일에는 누구보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 등의 파워 엘리트가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한국 일반 국민도 차제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무고한 시민이 피를 흘리는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 정치 권력을 쥔 지도자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명령을 내린 사람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이번에 육해공에서 이스라엘에 무차별 선제 공격을 가한 결정을 내린 장본인은 하마스 최고지도자인 이스마엘 하니예다. 이들 전범의 공통점은 극단주의자라는 점이다.
이번 이·팔 전쟁의 핵심 원인 제공자로 이스라엘에서 극우 정권을 장기간 이끌어온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꼽힌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주요 언론은 네타냐후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개의 국가 존립 방안을 무력화하려고,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함으로써 하마스 테러 공격의 명분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다. 그는 1996~1999년, 2009~2021년에 이어 세 번째로 2022년부터 현재까지 이스라엘 총리를 맡고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지배하고, 온건파인 파타(Fatah) 정파가 웨스트 뱅크를 차지하는 분할 지배체제를 유도해 왔다. 이제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 지구에 대한 하마스의 지배를 끝장내거나 하마스의 군사 능력을 완전히 파괴하는 초토화 작전을 주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 지구 장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곳에서 자국 주민을 전면 철수시켰다. 하마스는 2006년 의회 선거에서 승리했고, 2007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부터 권력을 찬탈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현재 요르단강 서안 지구만을 장악한 상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네타냐후 총리처럼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한 뒤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행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그는 이르면 11월에 내년 대선 출마를 발표한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에게 러시아 일인자 자리를 넘겨받아 지금까지 대통령 4회, 총리 1회를 역임하며 23년 이상 집권해 왔다. 내년 대선에 출마하면 5선에 도전하는 셈이다.
문제는 하니예 하마스 최고지도자, 네타냐후 총리,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극단주의 정치 지도자들이 갈수록 득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포퓰리스트 도널드 트럼프가 2024년 재집권을 노리고 있다. 최근 연방 정부 셧다운 사태를 막으려고 타협했던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을 축출한 의원들도 맷 게이츠를 비롯한 공화당 내 극우파 집단인 프리덤 코커스 멤버들이다.
한국 파워 엘리트는 이·팔 전쟁을 지켜보면서 국가 안보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해야겠지만, 일반 국민은 극단주의 성향의 정치인 출현과 득세를 막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