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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오일 쇼크와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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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오일 쇼크와 베네수엘라

국제유가를 좌우하는 사우디 유전 이미지 확대보기
국제유가를 좌우하는 사우디 유전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로 중동 전쟁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 국제유가가 하락했다. 인플레에 허덕여온 세계 경제로서는 모처럼 낭보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뉴욕증시는 상승랠리를 보였다. 뉴욕증시 뿐 아니라 달러환율 국채금리 금값 그리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암호 가상화폐도 국제유가 하락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파병 움직임 속에서도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인 것은 베네수엘라 덕분이다. 이-팔 전쟁으로 중동산 원유 생산과 유통이 차질을 빚더라도 그 부족분을 베네수엘라 원유가 메꿀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왔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훈풍을 처음 보도한 곳은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워싱턴포스트(WP)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 제재를 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가 내년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국제사회의 감시 아래 공정하게 치를 것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원유수출 제재를 푸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 1위다. 원유매장량 1위 국가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 완화 소식에 글로벌 원유 시장의 공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면서 국제유가가 떨어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정·민주선거 보장’을 위한 대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와 야당 협상단은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에서 2024년 대선 관련 정치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할 예정이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미국은 2018년 베네수엘라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을 봉쇄하는 등 마두로 정권을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다. 그 바람에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는 유럽 등 시장에 석유를 수출할 수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 제재가 풀린다는 소식에 뉴욕상업거래소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1.03달러(1.17%) 하락한 배럴당 86.6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과 베네수엘라와의 협상은 이미 보유한 원유 재고의 수출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 석유가 발견된 것은 1918년이다. 이후 새로운 유전이 속속 발견되면서 오늘날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적인 원유 국가가 되었다. 1970년대 두 번의 석유파동으로 기름값이 오르면서 베네수엘라에는 돈벼락이 터졌다. 베네수엘라는 이 오일머니를 잘 다루지 못했다. 거꾸로 오일머니가 국가경제 파산의 단추가 돼 버렸다. 넘쳐나는 석유 덕에 굳이 다른 산업을 발전시키지 않아도 먹고살만했기 때문에 안일해져 간 것이다. 원유를 팔아 벌어들인 외화, 오일머니는 정치권과 결탁한 기득권층에 집중되었다. 극소수만 잘 살고 나머지는 모두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게 되는 양극화에 빠졌다. 그러다가 석유 가격마저 폭락하게 되자 국가 존망의 위기로 치달았다.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 좌파의 우고 차베스가 등장했다. 차베스는 1998년 56%라는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때부터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된다. 차베스는 석유를 판 돈으로 빈곤층에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을 제공하면서 생활 안정에 힘을 썼다. 재정이 풍부해지자 국영상점을 운영하고 모든 상품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었다. 중산층 서민은 대환영이었다. 복지예산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정부 재정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차베스는 석유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외국 정유회사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사기업 회사들이 진출해 있던 석유 산업을 정부 산업으로 이관시키려 했다.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며 정부 수익을 높이려 한 것이다. 오랫동안 외국기업들의 기술에 의존해왔던 베네수엘라는 그들이 남기고 간 공장을 얼마간 돌리는 건 가능했지만 노후된 장비들을 재설비할 기술은 없었다. 결국 석유를 가지고 있어도 이를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다. 경제 구조는 망해버린 것이다.

차베스 이후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으로 오르게 된다. 마두로는 본인 스스로를 '차베스 신봉자'라고 할 정도로 차베스의 정책 방향을 그대로 따랐다. 2018년 국내외의 반발 속에 마두로 대통령이 두 번째 6년 임기에 성공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부정선거라며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9년 미국이 베네수엘라 최후의 자금줄인 '석유 수출 금수 조치'를 취했다. 안 그래도 나라가 위태로운 시점에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가 가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두로는 나라에 더 이상 돈이 없어 복지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지자 그 대책으로 화폐를 계속해서 찍어내기 시작한다. 시장에 많은 돈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하이퍼 인플레였다. 화폐 가치가 추락할 대로 추락하여 돈이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돈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등 돈이 종이 쪼가리가 되어버리는 초 인플레이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경찰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거리에서는 약탈과 살인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베네수엘라는 결국 세계 살인율 1위에 등극하며 가장 위험한 나라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석유부국에서 마실 물조차 부족한 극빈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북부에 위치한 국가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에 의해 식민지로 경영되어 오다 19세기 초 독립하였다.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어로 ‘작은 베네치아’라는 의미이다. 정식명칭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Republica Bolivariana de Venezuela )이다.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도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개척되었던 카라카스(Caracas)이다. 북쪽으로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 가이아나, 남쪽으로 브라질, 그리고 서쪽으로 콜롬비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1522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 18세기 초까지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Virreinato de la Nueva Granada)’에 속해 있었다. 독립영웅이었던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와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Francisco de Miranda) 등의 투쟁으로 1811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독립 이후 베네수엘라는 풍부한 석유 자원을 활용하여 1970년대까지 호황을 이루었으나, 1999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당선 이후 개혁 정치를 단행하면서 좌우파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미국의 경제봉쇄정책도 진행되어 2023년 현재 석유 등의 자원 보유에도 불구하고 초 인플레이션 등의 경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차베스가 미국이 던진 화해의 조건을 받을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미국이 제재를 푼다고 해도 그동안 생산시설이 낙후되어 본격적인 증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팔전쟁으로 야기될 수 있는 오일쇼크의 공포를 막아내는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협상이 주목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