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은 의료 서비스 수요 증가에 맞춰 의사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다. 독일(8317만 명)은 공립 의과대학의 총정원이 9000명을 넘지만, 이를 1만5000명가량으로 늘리기로 했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영국(6708만 명)은 2020년에 모두 8639명을 뽑았고, 2031년까지 1만5000명까지 늘어난다. 프랑스·일본 등도 의대 정원을 지속해서 늘려 나가고 있다.
미국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는 만성적인 의사 인력난 해소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미 의회에는 올해 3월 ‘전공의 부족 감축법안 2023(Resident Physician Shortage Reduction Act 2023)’이 초당적으로 발의됐다. 이 법안은 전공의를 매년 2000명씩 향후 7년 동안 1만4000명을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늘어나는 전공의 10%를 필수 의료 인력이 부족한 시골 지역에 배치하도록 의무화했다.
AAMC는 오는 2034년 3만8000~12만4000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연구 보고서를 발표해 전공의 숫자를 늘리려는 정치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의학협회(AMA), 미국가정의협회(AAFP), 미국소아과협회 (AAP), 미국정형외과대학협회(ACO), 미국부인과대학협회(ACG) 등을 비롯한 의료 관련 협회도 공동성명을 통해 전공의 증원 법안 지지를 표명했다. 이들 협회는 “우리가 의사, 전공의, 전임의, 의과대학 재학생 등 60만 명을 대표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국인 미국 의대 졸업생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의사채용재허용법(Physician Access Reauthorization Act)’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전공의를 쉽게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의 수련 비용을 대부분 연방정부가 대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7년 이후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서비스센터(CMS)가 제공하는 전공의 수련 비용을 증액하지 않고 있다. 이 예산이 늘어나지 않으면 각급 병원이 전공의 숫자를 늘릴 수 없다.
미국에서도 전공의가 늘어나면 의사들이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기득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를 게 없다. 대한의사협회와 같은 특별이익단체의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는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