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이스라엘을 무조건 도울까. 중동의 대형 산유국들에 비견한다면 이스라엘은 경제적 가치 면에서 크게 떨어진다. 가장 실용적이라는 미국이 큰 이익을 마다하고 작은 이스라엘에 목을 매는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혹자는 미국에 유대인이 많이 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의 수는 600만 명 내외로 추산된다. 그중 혼혈을 뺀 순종 유대인은 절반가량이다. 3억 명이 넘는 미국 인구에 비하면 그저 조족지혈일 뿐이다. 미국의 흑인 인구는 4000만 명을 넘었다.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인구수만 보고 아프리카를 돕는다는 소리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다.
인종으로도 더더욱 해석이 안 된다. 미국 사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앵글로·색슨족은 게르만족의 한 지파다. 게르만족이 가장 싫어한 민족이 유대인이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유대인 대학살극을 벌인 히틀러 역시 독일계 게르만족이다. 영국도 2차 대전 전까지는 유대인 ‘게토’라는 집단수용소를 만들어 특별 관리해왔다. 그런데도 오늘날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이란 말만 나와도 깜빡 죽는다. 아니 이스라엘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른다.
오늘날 미국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로비스트와 로비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센 곳이 바로 AIPAC이다. AIPAC은 영어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의 약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미국 이스라엘 공공 문제 위원회다. AIPAC은 그 정관에서 설립 목적을 "미국의 정책 방향을 친이스라엘 쪽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해 이스라엘에 유리한 정책이 나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AIPAC을 방문한 적이 있다. 취재차 AIPAC이 주관하는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 내로라하는 미국의 실세들이 다 모여 있었다. 미국의 현직 국회의원만도 상하 양원을 통틀어 200여 명 이상이 참석하고 있었다. 미국 연방의회는 상원 100명, 하원 435명으로 구성돼 있다. AIPAC의 한 세미나에 참가한 의원 수가 미국 의회 전체 의석수의 3분의 1을 훌쩍 넘었다. 민간단체의 행사에 현직 정치인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대통령과 부통령도 모습을 드러냈다. 워싱턴포스트는 다음 날 현직 의원들의 참석 장면을 1면에 크게 보도했다.
AIPAC은 이스라엘의 국가 이익을 위해 결성된 특수 조직이다. AIPAC 사무실 복도는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이스라엘의 국익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거나 무료로 이스라엘에 불이익을 준 연방 의원들의 사진을 진열해 놓고 있다. 반대의 정도에 따라 빨간 줄이 더 많이 쳐져 있다. 선거 때가 되면 반(反)이스라엘 정치인들은 AIPAC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 우선 모든 유대인에게 편지를 보내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한다. 이들의 비리를 조사해 언론 등에 폭로하거나 검찰에 고발한다.
더 무서운 것은 AIPAC의 자금 살포다. 친이스라엘 후보에게 돈을 대주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이스라엘 정치인을 떨어뜨리기 위해 전국의 AIPAC이 나서 그 후보의 상대방에게 무한정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의 수많은 현직 의원들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AIPAC 모임에 나타나는 것은 유대인 조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평소에 이스라엘 또는 유대인을 지지하는 표결에 앞장서야 선거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유대인 지원은 받지 않더라도 최소한 유대인의 눈 밖에 나지는 말아야 한다. 유대 단체에 한 번 적으로 찍히면 정치생명은 그야말로 끝장이다. 돈으로 무장한 유대인의 조직적 로비가 이스라엘의 생명줄인 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