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북한, 최대 교역 대상국인 중국을 의식해 늘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한·미 관계를 끌고 갈 수 없었다. 한국이 북한과 군사적 충돌을 각오하면서 무한 대결을 할 수는 없다. 북한과 대화하려면 중국의 도움이 긴요하다. 또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핵심 이슈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의 손을 덥석 잡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지정학적·경제적·역사적인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외교 노선을 택하다 보니 미국 조야는 한국에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늘 긴장한다. 한국이 미국의 국익을 뛰어넘어 친중 또는 친북 노선을 취하지 않을까 조바심을 냈다. 미국의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본질적으로 이런 한국관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한·미 양국이 각각 보수-보수, 진보-진보 조합이면 진보-보수 조합일 때보다는 나았지만, 보수-진보 조합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명박-버락 오바마, 박근혜-오바마 시절은 김대중-부시, 노무현-부시 재임 당시보다 훨씬 순탄했다.
한국의 진보 정부와 미국의 보수 정부가 갈등을 겪게 되는 핵심 요인으로는 한국 진보 정권의 대북 유화책이 꼽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에 미국의 부시 정부가 강력 제동을 걸었고,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게 패었다. 문재인-트럼프 시절에는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압박함으로써 한미 동맹의 토대가 흔들렸다.
김대중·노무현은 모두 부시와의 공식 회담에서 엇박자를 냈다. 2001년 3월 7일 DJ-부시 공동기자회견에서 부시는 DJ의 발언을 중간에서 자르기도 했고, DJ를 ‘이 양반(this man)’이라고 지칭해 굴욕을 안겼다. DJ-부시 회담보다 더 심각한 외교 참사는 2005년 11월 17일 경주에서 개최한 노무현-부시 회담이다. 이 회담 참석자에 따르면 두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놓고 언쟁을 벌였고, 급기야 부시가 “그럼 내가 전쟁광이라는 말이냐?”고 거칠게 쏘아붙였다.
이제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다시 한번 백악관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대선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트럼프에 계속 밀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트럼프를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한·미 외교사를 되돌아보거나 트럼프의 국수주의 노선을 볼 때 태평양 먼바다에 먹구름이 조성되고 있는 형국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