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막말과 욕설 정치가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국에 비하면 그래도 품격이 있었던 미국의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됐다. 지난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동’으로 그의 지지자들이 국회 의사당을 폭력으로 점거했다. 그런 그가 다시 차기 대선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미국 정치도 갈 데까지 다 갔다.
한·미 양국에서 정치인의 막말과 욕설도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 있다. 트럼프가 실제로 이를 입증했다. 트럼프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해충(vermin)’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11일 뉴햄프셔주 클레어몬트 연설에서 “우리나라에서 해충처럼 살며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하고, 선거에서 속임수를 쓰는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파시스트, 급진적 좌파 깡패들을 근절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도 ‘해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곧 그가 이 말을 즉흥적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재임 당시 군 최고 참모였던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에 대해서도 “사형에 처해야 할 배신자”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트럼프는 포르노 배우와의 부정 입막음 시도 혐의로 자신을 기소한 맨해튼 검찰 앨빈 브랙 검사장이 “덜 떨어진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트럼프는 9월 중순에는 민주당 의원들을 겨냥해 "불량배들(lowlifes)"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이런 험한 입을 틀어막으려고 법원이 개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트럼프 재산 부풀리기 의혹 민사소송을 관장하는 아서 엔고론 뉴욕주 판사는 트럼프에게 5000달러(약 647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면서 트럼프가 발언 중지 명령을 계속 어기면 투옥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시도 혐의로 자신을 기소한 잭 스미스 법무부 특별검사에 대한 과격한 비난 발언으로 워싱턴 법원으로부터도 발언 중지 명령을 받았다.
트럼프의 막말 정치는 공화당의 다른 경쟁자들에게 고스란히 전염되고 있다. 최근 공화당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인도계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같은 인도계 기업인 출신인 비벡 라마스와미에게 “당신은 그냥 쓰레기야(You’re just scum)”라고 했다. 라마스와미 캠프도 헤일리에게 “너야말로 반역자 쓰레기(rebel scum)”라고 쏘아붙였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당선되면 연방정부 관리들의 “목을 베겠다”고 했고, 남부 국경지대 마약 밀수범을 “차가운 시신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품위를 유지해온 공화당 대선 예비 주자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 공화당 유일의 흑인 상원의원 팀 스콧은 중도 하차를 선언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공화당에서 해충과 쓰레기가 유쾌한 전사들을 몰아냈다”고 개탄했다.
한국 정치판에서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타깃으로 한 막말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검사범죄대응TF 팀장인 김용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한동훈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금수의 입으로 결국 윤(석열) 대통령을 물 것”이라고 썼다. 유정주 의원은 “그닥 어린 넘도 아닌, 정치를 후지게 만드는 너”라고 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지난 9일 출판기념회에서 “이런 건방진 ×이 어디 있나. 어린 ×”이라고 했다.
한국이나 미국의 선거판에서 집토끼를 먼저 잡고, 산토끼를 쫓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무당층과 중도층이 승패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들이 막말, 혐오 정치의 준엄한 심판자가 돼야 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