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전의 첫 단추는 출마자 선정이다. 한국은 주요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고, 미국에서는 중앙당의 개입 없이 지역구에서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한다. 어느 쪽이든 출마 희망자가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또한 한·미 양국이 여야 간 ‘막가파’식 극한 대결로 정치권과 사회가 두 동강이 난 상태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 모두 총만 들지 않았을 뿐 ‘내전’ 중이다.
미국 언론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11월에만 모두 13명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런 은퇴 선언 의원 수는 월간 기준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선거를 1년가량 앞두고 벌써 현역 상하 의원 중에서 불출마 선언자가 38명에 이른다. 미국 언론은 이번에 올해 12월과 내년에 불출마자가 많이 늘어나 2018년과 2022년 당시의 현역 의원 55명 불출마 기록이 깨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줄잡아 현역 상하 의원 중 최소한 10% 이상이 일단 자진해서 더는 선거에 나가지 않기로 했고, 이 비율이 갈수록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현역 상하 의원 당선율이 90%를 훨씬 넘는다. 불출마 의원들은 당선이 거의 보장돼 있지만, 스스로 의원직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당시에 상원의원 선거 33곳에 재출마한 현역 의원은 전원 당선됐다. 재출마한 하원의원은 94.5%가 당선됐다. 미국에서는 상하 의원 선거구에서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을 치르기에 현역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현역이 선거 자금 모금 능력에서 신인 도전자를 압도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신인의 정계 진출이 그만큼 어렵다.
한국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진을 포함한 여야 현역 의원들이 지역구를 지키려고 사투를 벌인다.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는 당 지도부와 중진, 친윤 의원들의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요구했으나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한국에서는 현역 의원의 불출마를 ‘희생’이나 ‘혁신’으로 포장하려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문제는 현역 의원들이 퇴장하면 정치가 발전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한국은 몰라도 최소한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그나마 소신을 지키면서 정쟁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의원들이 정치에 염증을 느껴 떠나면 그 자리를 당파 색이 더 짙은 투사형 신인이 메운다. 이렇게 되면 정치가 갈수록 더 퇴보하는 악순환 구조 속으로 빠져든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