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뉴욕증시에 따르면 의사결정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비상장 셰일오일 업체들이 신기술을 적용해 빠르게 생산량을 늘리면서 다른 산유국들의 담합 시도를 무력화한 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EIA는 최근 단기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4분기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을 하루 평균 1천326만 배럴로 예상했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EIA는 2023년 4분기 미국 원유 생산량을 하루 1천251만 배럴로 예상한 바 있다. 이 같은 생산량 차이는 전 세계 원유시장의 공급에 남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추가된 것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분석했다.
시추 기술의 발전도 셰일오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최대 셰일오일 산지에서 시추 작업을 하는 다이아몬드백 에너지의 경우 최근 3년새 평균적인 유정에서 셰일오일을 뽑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40% 단축했다. '셰일 혁명' 초기 생산량 증대에만 집중하던 셰일 업계가 2010년대 중후반 저유가 시기 생산 효율화에 집중하면서 기술혁신을 이룬 탓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며칠 전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국제유가가 반등했다. 미국이 조만간 금리를 내릴 것이란 의중을 내비치자 주식·채권과 금값 등이 일제히 급등하는 이른바 '산타 랠리'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가 상승 랠리가 오래갈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추가 감산 합의가 미흡했고, 생산량이 실제로 줄어들지도 미지수다.
사우디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사우디가 애써 손해를 감수하고 감산을 해서 미국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일 1300만배럴의 원유를 비롯해 액화석유가스(LNG) 등 석유 제품 생산량이 일일 2000만배럴을 돌파했다. 한국이 지난해 수입한 원유 중 사우디산이 가장 많았고, 미국산이 두 번째로 많았다. 그러자 사우디는 최근 아시아 시장의 1월 인도분 아랍 경질유 가격을 배럴당 0.5달러 낮추는 등 정책을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말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1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0.29% 오른 배럴당 71.7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2월 12일 기록한 6개월 만에 최저가인 67.79달러에서 6%가량 오른 가격이다. 지난 9월 배럴당 90달러를 넘긴 후 하락세로 돌아선 WIT 가격은 지난주 Fed의 금리 동결 이전까지 약세를 지속했다.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Fed의 결정 이후 국제유가가 반등한 것은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고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국제 에너지기구(IEA) 역시 지난주 미국 경기가 연착륙하는 '골디락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석유 수요가 올해보다 일일 평균 110만 배럴 정도 더 늘어날 것이란 내용의 월간 보고서를 냈다.
국제 유가 상승세가 본격화될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이 원유 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고, 내년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위해 증산을 장려하고 있어서다. 신규 유전을 개발한 브라질과 가이아나 등 OPEC+ 비회원국들 역시 증산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전세계 원유 시장에서 OPEC+의 비중은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51% 수준까지 떨어졌다. 내년 원유 수요가 늘어난다는 IEA의 보고서를 감안해도, OPEC+ 비회원국의 생산량 증가가 수요 증가분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