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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이령 옛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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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이령 옛길을 걷다

백승훈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백승훈 시인
산행을 떠나는 날, 기다리는 눈 대신 아침부터 찬비가 뿌렸다. 우이령 옛길은 트레킹하기엔 더없이 좋은 길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은 걸어야지 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사전 예약하는 게 귀찮아 매번 뒤로 미뤄두었던 길이다. 다행히 숲 모임에서 12월 행선지를 이곳으로 정한 덕분에 해를 넘기지 않고 우이령 옛길을 걸을 수 있었다. 비 오는데 무슨 산행이냐는 지청구를 들으며 집을 나섰지만 다행히 비는 우산을 펼치기도 애매할 만큼 흩뿌렸고, 비에 젖은 숲 내음이 한결 발걸음을 경쾌하게 해주었다.

우이령 옛길은 서울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를 가장 단거리에 연결하는 길로 총 6.8㎞에 이른다. 경기도 교현리 방향이 3.7㎞, 우이동 방향이 3.1㎞다. 우이령이란 이름은 남쪽 북한산과 북쪽 도봉산의 능선이 고개를 중심으로 ‘소의 귀’처럼 축 늘어졌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래 작은 오솔길에 불과하던 좁은 길이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군 공병부대에 의해 수송도로로 넓어졌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침투사건’으로 통제된 지 41년, ‘서울 도심의 DMZ’로 불리며 북한산의 마지막 남은 생태 보고였던 우이령 옛길이 다시 열린 건 2009년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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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현탐방센터에서 출발하여 우이령까지 걸었다. 오랜 기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덕분에 우이령 숲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국수나무와 산벚나무, 진달래, 철쭉 등이 군락을 이루고 리기다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언뜻 보아도 건강한 숲임을 알 수 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자연스러운 법이다. 40여 년 동안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은 숲은 관목과 교목, 침엽수와 활엽수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숲길을 걷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숲이 한껏 단출해지는 겨울이 아니었다면, 찬비만 뿌리지 않았더라도 사람에 취하고 풍경에 취해 우리는 더 오랜 시간 그 숲길을 걸었을 것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을 양쪽 옆구리에 끼고 걷는 계곡길, 도봉산 쪽으로는 조망이 확 트였다. 비안개 사이로 오봉이 수묵화처럼 흐릿하다. 맞은편 북한산 상장능선에서 5명의 장사가 힘자랑으로 바위를 던져 제일 멀리 간 사람이 원님의 외동딸을 차지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다섯 개의 바위 봉우리, 그 오봉(660m)이다.

비를 피해 쉼터에서 저마다 싸 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떡과 김밥, 커피와 과일까지 간식이라 하기엔 제법 풍성하다. 숲 공부를 끝내고 시작한 모임이 벌써 5년을 넘겨 62회째 숲 탐방이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인 최인철 교수는 ‘제3의 공간’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다. 제3의 공간은 소박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으며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숲을 탐방하는 우리 모임이야말로 최고의 제3의 공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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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모임을 자축하는 시를 끄적여 보았다.

“세상의 착한 나무들이 어울려 사는/ 그 숲에 가면/ 우리는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한나절 푸른 하늘 우러를 수 있네// 저마다 끌고 온 길/ 풀섶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산을 내려가는 냇물처럼/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다 보면/ 세상의 시름쯤은 거뜬히 잊을 수 있네// 언제나 함께 할 순 없어도/숲에선 늘 함께 있는 우리는/ 숲으로 맺은 소중한 풀빛 인연//몸속에 나이테를 품고 사는 나무처럼/ 함께 걸어온 길 가슴속에 곱게 갈무리면 아직 걸어야 할 길이 한나절 남아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 생각하면/ 잎이 돋고 꽃이 피는 숲으로의 행복한 동행이여.”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