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 대미는 우리 팀이 잘못하고 있는 일을 정리해 팀장님께 보여드린 사건이다. 당시 나는 물류 포워딩이 끝나면 금액을 청구하는 일을 담당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계속해서 우리 팀에 결론적으로 마이너스인 조건으로 일해 오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서비스 금액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간 데이터를 엑셀로 정리했다. 다만, 이걸 사수에게 보여줄 생각을 못 하고 바로 팀장님께 보여 드렸다. 팀장님은 칭찬하셨고, 바로 과장님·대리님·사수를 진실의 방으로 소환하셨다. 한동안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나온 그들에게는 클라이언트 및 해외의 모든 법인과 연락해 서비스 금액을 조정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정말이지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 같다. 이 일이 있고 바로 내가 깨달았다거나, 행동 교정의 피드백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과장님·대리님·사수로부터 아무런 응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팀에 기여했다는 생각으로 하하호호 즐겁게 회사를 다녔고 행복하게 인턴십을 마무리했다.
신형철 평론가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이런 뉘앙스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는 타인을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 믿는다고. 나는 이 구절을 종종 입안에서 곱씹는다. 나는 당연하게 A로 갔을지언정, 타인은 자연스럽게 B로 갈 수도 있는데, 나는 B로 간 타인을 '나빠서, 바보라서,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되묻지 않아왔다. 생각의 편리함만으로 뭉개 버릴 수 없는 가치가 숨어있을 수도 있고, 그것이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질문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조직의 문화에서부터 '끝까지 묻기'로 넘어가는 일은 일견 어려운 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전에는 '끝까지 묻기'와 같은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교육이나 캠페인적인 것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우리 회의 시간에 ~해요'와 같은 Do & Don’t 포스터를 만들어 붙인다든지, 생각을 나누는 워크숍을 만들어 FT를 한다든지 같은 것이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 강제하는 제도가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은 강하다. 그러한 제도는 개개인의 성격적인 특성이나 장단점을 뛰어넘어 행위하게 한다. 특히 나같이 어떤 사람에게 거절이나 요청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PM으로 기능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아무리 적극적이고 의견 개진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의견을 내면 모난 돌 취급받는 곳에 있다면 그곳에서 오피니언 리더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내향적이고 의견을 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제도가 견인하는 조직문화가 잘 작동하는 곳에 가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게 된다.
아마존에 다니는 내향적인 사람, 주목받기 싫어하는 PM의 하루를 상상해 보았다. 그의 일상 삶은 조용하게 나서지 않는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존에서의 생활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며 내외적으로 들끓으며 이리저리 튀는 하루였을 거라 상상했다. 우리의 조직도 개인의 특성과 행동양식을 뛰어넘어 행위하게 하는 문화를 가졌는지, 그러한 문화를 견인하는 시스템(제도)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김다혜 플랜비디자인 책임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