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는 아프리카에서 둘째로 석유를 많이 생산하는 산유국이다. 앙골라는 그동안 OPEC 전체 생산량인 하루 2800만 배럴 중 110만 배럴을 생산해 왔다. 비율로는 3.92%다. 작지 않은 비중이지만 그렇다고 OPEC을 한꺼번에 뒤흔들 정도로 많은 양도 아니다. OPEC에서 앙골라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볼 때 앙골라가 떠난다고 해서 OPEC의 영향력이 당장에 크게 줄어들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앙골라의 OPEC 탈퇴에 따른 단기적인 영향은 물론 제한적이다.
앙골라의 OPEC 탈퇴는 석유 감산을 주장하던 사우디와의 의견 불일치에 따른 결정으로 해석된다. 지난달 일부 아프리카 회원국들이 감산에 반대하며 OPEC 회의가 나흘간 지연됐는데 그 중심에 바로 앙골라가 있었다. 앙골라의 탈퇴로 OPEC 회원국은 12개국으로 줄어들게 된다. 앙골라의 이번 탈퇴 결정이 산유국들 간 이해관계 갈등에서 야기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바로 그런 면에서 OPEC 전체에 대한 정치적인 타격일 수 있다. 앙골라 탈퇴가 산유국 카르텔 분열에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OPEC은 전형적인 카르텔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카르텔은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서로 가격이나 생산량, 출하량 등을 협정해서 경쟁을 피하고 이윤을 확보하려는 행위다. 시장 통제를 목적으로 기업이나 국가가 협정에 의해 결합하는 것이다. 카르텔이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카르텔의 시장 비중이 높고 또 회원 간의 결속이 단단해야 한다. OPEC은 최근 들어 점유율과 단합 두 가지 면에서 카르텔로서의 위력이 떨어지고 있다. 앙골라 탈퇴는 OPEC의 위력 추락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OPEC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막강한 파워를 보여줬다. 중동전쟁 국면에서 OPEC은 석유 감산 조치를 취했다. 감산 조치가 전 세계적인 오일쇼크를 몰고 오면서 OPEC의 존재감이 커졌다. 그때부터 OPEC은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국제기구가 되었다. 중동전쟁 때 위력을 보인 것은 OPEC 산유국들이 그만큼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앙골라 같은 회원국이 탈퇴하는 상황에서는 OPEC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제유가를 몰아가기가 어렵다.
OPEC의 힘을 빠지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미국이다. 미국이 셰일가스를 크게 증산하면서 사우디 산유량을 추월했다. 미국의 셰일가스 증산으로 국제유가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 등 OPEC 감산에도 국제유가가 오히려 떨어지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미국의 셰일가스에 있다. 중동 주요 산유국과 러시아의 추가 감산 결의에도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간 배경에 예상을 크게 넘어선 미국 셰일오일 업계의 증산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EIA는 올해 4분기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을 하루 평균 1326만 배럴로 예상했다. EIA는 2023년 4분기 미국 원유 생산량을 하루 1251만 배럴로 예상한 바 있다. 이 같은 생산량 차이는 전 세계 원유시장의 공급에 남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추가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국제유가는 올해 하반기 들어 사우디·러시아의 감산 결정 등의 여파로 지난 9월 한때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하는 등 가파르게 상승한 바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도 주주환원을 우선시한 미국 셰일업체들이 증산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공급차질 우려를 부채질했다. 실제로 셰일오일 시추장비 수가 크게 늘지 않은데다 대형 에너지 업체들이 생산계획 전망치를 크게 높이지 않으면서 전문가들도 미국 셰일오일의 증산량이 미미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비상장 셰일오일 업체들이 생산량을 빠른 속도로 늘리면서 전문가들의 전망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을 과소 추정하게 했다. 비상장사인 뮤본오일, 엔데버 에너지리소시스의 증산량은 미국 최대 에너지 업체인 엑손모빌의 증산량을 능가했다.
시추 기술의 발전도 셰일오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최대 셰일오일 산지에서 시추 작업을 하는 다이아몬드백 에너지의 경우 최근 3년 새 평균적인 유정에서 셰일오일을 뽑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40% 단축했다. '셰일 혁명' 초기 생산량 증대에만 집중하던 셰일 업계가 2010년대 중후반 저유가 시기 생산 효율화에 집중하면서 기술 혁신을 이루었다.
미국 셰일 업계의 증산 영향으로 주요 산유국의 최근 추가 감산 결의는 무력화되는 분위기다. 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는 지난달 말 하루 220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감산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국제유가 내림세를 막지 못했다. 미국의 셰일 업계가 세계 석유 카르텔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의 국제유가는 OPEC 감산과 미국 셰일가스의 기싸움에 달려 있다고 보는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