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시간엔 눈금이 없다. 그 유유히 흐르는 시간에 눈금을 그려 넣은 것은 우리 인간이다. 분절 없는 시간에 눈금을 그려 넣은 것은 자칫 주저앉기 쉬운 마음을 다독여 일으켜 세우기 위한 인간만의 탁월한 지혜라 할 수 있다. 제 몸속에 나이테를 간직하고 사는 게 나무이지만, 열대우림에 사는 나무는 나이테가 없다고 한다. 계절의 변화를 겪지 않으면 나이테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나무들은 크나 작으나 나이테가 있다. 각기 저마다의 나이테를 간직하고 살면서도 나무들은 평생 나이테를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들은 한 번도 꽃 피는 때를 놓치거나 열매 맺는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때맞춰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내어 단다. 한시도 외부의 변화를 읽는 일에 게으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삶이란 자신만의 루틴을 이어가는 일이다. 루틴이란 일상에서 반복되는 습관 같은 것인데, 루틴의 어원 'route'는 '길(road)'이라는 의미다. 길을 따라 꾸준히 가는 것처럼, 일정한 시간에 자신이 정해 놓은 동일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바로 루틴이다. 겨울 숲의 나무들, 특히 잎을 모두 내려놓은 활엽수들은 얼핏 보면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무들은 잎을 달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루틴으로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마치 생사를 초월한 듯한 모습에서 묵언수행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들은 그저 깊은 침묵에 잠긴 것이 아니라 겨울눈 속에 희망을 갈무리한 채 새로운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일하신가요?”
내가 지인들과 SNS로 인사를 나눌 때 자주 쓰는 단골 멘트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온한 날을 보내고 있느냐고 안부를 묻는 것이다. 젊었을 때와 달리 나이 들수록 소망은 작아지고 점점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바뀌는 듯하다. 큰 야망을 품는 대신 큰 변화 없이 평온한 일상을 살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새해에도 가족 모두 무탈하게, 아픈 데 없이 저마다 하는 일이 잘되고 마음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가진 자는 늙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거기에 덧대어 나는 “꽃 피는 나무는 늙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나이 들수록 바라는 것도 적어지고, 욕심의 크기 또한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유한한 생을 사는 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꽃을 피우는 나무는 늙지 않는다. 가지 끝에 꽃눈을 달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우리 가슴속에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청춘이다. 무탈하게, 그러나 조금씩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새로 받아 든 갑진년은 말 그대로 값진 한 해가 될 것이다. 부디 여여생생(如如生生) 하는 한 해이기를 소망해 본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