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문태준의 ‘산수유나무의 농사’ 전문
한때는 꽃을 찾아 전국을 누비기도 했으나 이젠 일부러 꽃을 찾아 길을 떠나진 않기로 했다. 기다려도 봄은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은 핀다. 기다림은 시간을 꿀처럼 더디게 흐르게 만들지만 진득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봄을 기다리기로 했다. 남녘의 친구가 보내준 청매화 사진을 보면 절로 엉덩이가 들썩이기도 하지만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머지않아 나의 주변에도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눈 녹은 골짜기엔 노루귀꽃이 피어나고, 제풀에 몸이 뜨거워진 얼레지도 봄 햇살 아래 보랏빛 꽃송이를 보란 듯이 피울 것이다. 평생 한곳에 붙박이로 살면서도 사계절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때맞춰 잎을 내고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온전히 내 자리를 지키며 사계절을 제대로 맞이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부러 꽃을 찾아 먼 길 떠나기보다는 내 주변을 찬찬히 살피며 내 눈 속에 들어오는 꽃들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야 할 인연은 만나게 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하는 법이다.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곁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만나려 애쓰지 않아도 시절의 때가 되면 절로 만나게 된다. 올봄에는 나무가 자연의 순리대로 철 따라 꽃 피우고 열매 맺듯이 조바심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법을 제대로 배워야겠단 생각을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봄은 왔어도 봄 같지 않았던 봄이 얼마나 많았던가. 몇 번의 봄이 내게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라도 내게 오는 봄을 온전히 맞이하고 싶다. 늘어만 가는 나이쯤은 나무가 나이테를 제 몸속에 새기듯 속에다 새기고 늘 푸른 희망으로 오는 봄을 마중해야겠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