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여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왼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중 일부
상봉역에서 금병산이 있는 김유정역까지는 경춘선을 타고 70여 분이 걸린다. 우리나라 최초로 작가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에 내리면 그의 고향 마을에 세워진 김유정문학촌이 방문객을 반긴다. 마을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금병산 자락엔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등 재미있는 이야기 열여섯 마당과 만날 수 있는 실레이야기 길이 조성되어 있다. 30분에서 1시간 반까지의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문학기행을 오는 사람들이 꼭 한 번씩 걷고 가는 길이 되었다.
'만무방길'에서 시작하여 골짜기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가 '들병이가 넘어오던 눈웃음길'로 내려와 김유정 생가를 둘러보았다. 산을 오르면서 제일 먼저 눈을 맞춘 꽃은 올괴불나무꽃이다. 생강나무꽃은 곧 터질 듯이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고 이따금 길섶에 제비꽃이 눈에 띌 뿐 춘천의 봄은 아직 멀게 느껴졌다. 더욱이 정상에 가까울 무렵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정상에 올랐을 땐 이내 눈발로 바뀌어 휘날렸다. 다행히 지나는 구름의 장난인 듯 눈은 곧 그쳐 하산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산에서 어렵사리 몇 그루의 생강나무에서 노란 동백꽃을 보고 돌아서려니 아쉬웠는데 김유정 생가에 오니 눈길 닿는 곳마다 노란 생강나무꽃이 만개하여 알싸한 향기가 그윽하다. 금방이라도 생강나무 꽃그늘을 따라 소설 속 점순이가 나타날 것만 같다.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소설가 김유정의 작품을 다시 꼼꼼히 읽고 또 한 번 금병산을 찾고 싶단 생각을 했다. 숲길은 그냥 걸어도 좋지만 그 길 위에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훨씬 멋진 길이 된다. 짧은 봄날,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김유정의 소설집 한 권 챙겨 경춘선을 타고 김유정역으로 가 보시라. 거기, 노란 동백꽃이 당신을 반겨주리니.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