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은 2022년 3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해왔다. 금리를 올린 이유는 물론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금리를 올리면 돈을 빌린 사람들의 금융 부담이 커진다. 그 부담이 커지면 돈을 갚게 된다. 그러면 시중의 통화량이 감소한다. 통화량이 줄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려는 수요도 덩달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공급이 일정한 상황에서 수요가 줄면 수요 공급의 원리상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균형점이 내려오게된다. 균형점의 하락은 바로 물가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물가 하나만을 잡자고 했다면 미국 연준 FOMC 나 제롬파월 연준 의장이 벌써 그 목표를 달성했을 것이다. 미국 연준 FOMC의 기준금리는 이날 현재 5.25~5.5%이다. 만약 연준이 미국의 기준금리를 5.25~5.5%보다 훨씬 높은 55% 쯤으로 올렸다면 미국의 CPI와 PCE 물가 지수는 지금쯤 0선 밑을 지나 이미 수십 % 마이너스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금리라는 정책 수단은 이처럼 막강하다. 미국 연준 FOMC 나 제롬파월 연준 의장이 전가의 보도라는 금리인상의 칼을 함부로 남발하지않은 것은 금리인상을 통한 물가 하락의 강력한 메카니즘을 몰라서가 아니다. 물가 잡는다며 금리를 지나치게 올렸다가 또 하나의 정책 목표인 고용을 아예 망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스스로 자제를 한 탓이다.
필립스 곡선이론은 뉴질랜드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인 필립스(A.W. Phillips)가 1958년에 처음 발표했다. 필립스 곡선이론의 핵심은 "임금변화율과 실업률 사이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필립스의 이론을 과학의 경지로 승화시킨 인물은 경제학자 새뮤얼슨(Paul Samuelson)과 솔로교수(Robert Solow)이다. 새뮤얼슨과 솔로는 1960년 세계적인 경제학술지인 'American Economic Review'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에서도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 사이에 역의 관계가 실증적으로 성립함을 밝혔다. 새뮤얼슨(Paul Samuelson)과 솔로교수(Robert Solow)는 그 관계를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새무엘슨이 하버드대 총장과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의 외삼촌이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수치를 흔히 ‘고통지수’라고 부른다. 어느 국가나 인플레이션도 잡고 실업률도 낮추기를 원한다. 필립스는 이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고적으로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물가와 고용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의 토끼 처럼 상호 상충관계에 있다. 물가를 잡으면 성장이 무너지고 성장에 치중하면 물가가 흔들리는 속성이 있어 성장과 물가를 한꺼번에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성장과 물가를 한꺼번에 잡아 내야하는 것이 경제학의 숙명이다. 경제 정책의 성공 여부도 성장과 물가를 한꺼번에 잡아 내는데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에 역의 관계가 성립하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실업자가 증가하면 소득이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된다.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기업은 상품 가격을 인상하기 어렵다. 근로자 역시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물가가 안정된다. 실업자가 감소하는 시기에는 경기가 활발하므로 상품 가격과 임금이 오른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 필립스의 연구 결과는 경제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실업자가 많이 발생하는 경기 불황을 맞이하여 어느 국가가 경기 부양책을 사용한다고 하자. 그 덕분에 실업률이 낮아진다. 물가 역시 꿈틀거린다. 반대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는 국가에서 긴축 정책을 사용하면, 물가는 잡을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실업률이 상승한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상충 관계(trade-off)에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은 필립스 곡선 이론에서의 두 마리 토끼 즉 물가와 고용의 중요도를 똑같은 50대 50으로 보아왔다. 최근들어 그 비중을 달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스테파니 스탄체바 교수팀은 최근 조사에서 오늘날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고용보다 물가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스테파니 스탄체바 교수팀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물가가 오르는 것을 실업률 상승보다 두 배나 더 싫어한다는 것이다. 물가가 1%포인트 오르는 것은 실업률 1%포인트 상승보다 두 배나 더 나쁜 셈이다. 물가와 고용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굳이 중요성을 따져야 한다면 물가 안정이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미국 연준의 물가상승률 목표는 2%다. 6월 5일 상무부가 발표한 4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7% 올라 연준 목표보다 아직 높다.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이유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론상 물가상승률 2.7%는 용인할 수 있는 정도라고 평가한다. 2023년 4월의 4.4%보다 많이 내려온 것이고 2022년 6월의 7.1%와 비교하면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물가 상승을 너무나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스테파니 스탄체바 교수팀의 지적이다. 미국의 현재 실업률은 4%이다. 이 실업률이 5%로 상승하면 실업자가 170만명 늘어나게 된다. 물가 1%포인트 오르는 것이 이 같은 실업자 양산보다 두배나 더 싫다는 얘기다.
미국인들이 물가 상승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구매력 잠식 우려뿐만 아니라 정신적 부담 때문으로 나타났다. 빠듯한 예산에서 돈을 쓰려면 심리적인 타격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스탄체바 교수는 "예산 기준이 빠듯해지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은 늘 돈을 쓸 때 다시 생각하게 하는 요인으로, 기본적으로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대량 실업이 존재하고 국민소득이 절대적으로 낮은 저개발국은 실업률을 우선적으로 잡는 정책을 쓰는 경향이 있다. 물가를 포기하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인플레이션이 더 중요한 요소로 다가온다. 미국 미국 상황은 고용보다 인플레가 셈이다. 유럽과 캐나다가 금리인하를 시작해도 대선을 앞둔 미국이 선뜻 금리인하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