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서울 서이초 교사 사건 1주기를 맞는다. 교사, 학생, 학부모 등 학교의 각 구성원 집단이 얼마나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지에 관한 소식을 지난 1년간 유독 많이 접한 느낌이다. ‘예전의’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도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지난 1개월간 기자가 방문한 수도권 내 초·중·고의 모습은 별로 유별날 것 없이 그냥 ‘학교’였다.
학교는 평화로운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은 등교하며 교사에게 인사하고, 교사는 반갑게 화답한다. 스승의날에는 교실 곳곳에서 작은 손들이 만든 작은 이벤트가 펼쳐졌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교생들이 학교 곳곳에 파견돼 지난달 실습을 마치기도 했다. 운동회에서 펼쳐볼 장기자랑 준비에 밤늦게까지 남아 맹연습 중인 학생들도 보였다.
물론 크고 작은 사건들도 들려왔다. 대처 방식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도 있다. 슬리퍼를 신고 학교에 들어서는 학생들과 별다른 지적 없이 넘어가는 교사의 모습이 보인다. 1년 전 학생들의 투표로 정해진 수학여행 장소가 돌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교장실에 직통으로 민원을 넣은 학부모 소식도 접했다. 질병 결석, 질병 조퇴 사용도 사뭇 자유로워진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 세상이 천지개벽하듯 학교의 변화도 자연스러운 이치다. 과거에는 체벌이 암묵적으로 허용됐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반면 집에 전화 한 대씩 두고 쓰던 시절과 유아도 개인 휴대전화를 가지는 현재를 두고 ‘연락 빈도’를 저울질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악성 민원을 포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누가 죄인인가? 학교를 무언의 틀에 가두려 드는 우리 사회가 그렇다. 교사와 학생을 반으로 나눠 입법 경쟁을 벌이는 '높으신 분'들이 그렇다. 학교에 좋은 일이 생기면 칭찬하고, 문제가 있으면 조속히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문득 옛 노래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이민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j@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