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돌풍은 그 주변 기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엔비디아와 스치기만 해도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슈마컴으로 불리는 SMCI와 TSMC·브로드컴·퀄컴·휼렛패커드·델(Dell)·한미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대박을 친 SK하이닉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이 엔비디아와의 인연 덕에 동반 폭발하고 있다. 심지어 포토샵의 어도비까지 엔비디아 관련주로 분류되면서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엔비디아 돌풍이다.
JP모건의 데이비드 켈리 최고글로벌전략가는 "거품은 진정 고요한 상황 속에서 터지기가 쉽다"며 "거품이 거대한 규모로 커질 수 있고, 바람이 세질 때 거품이 터진다"고 말했다. 금리인하 기대와 함께 경기침체 우려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서 투자자들은 기술주 등 그동안 성과를 지속해온 부문에 더욱 크게 베팅하고 있다는 것이 켈리 최고글로벌전략가의 지적이다.
클린겔호퍼 CIO는 "엔비디아는 놀랍고도 놀라운 기업이지만 미국 경제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고, 근본적인 전체 주식들이 미국 전체 경제를 대변해야 한다"며 "그래서 가장 심각한 압박은 거대 기술주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뉴욕증시 주식, 특히 대형 기술주의 주가가 올해 10% 조정받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 경제가 둔화하기 시작한다면 더 큰 조정도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뉴욕증시에서는 엔비디아 돌풍을 1990년대 중반~2000년 초반에 진행된 미국 IT 버블 당시 네트워크 장비 업체 시스코시스템스와 비교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1995년 1월 주당 겨우 2달러에 불과했던 시스코 주가는 2000년 3월 27일 80달러까지 무려 4000% 폭등했다. 시스코 주가는 그러나 그다음 날인 3월 28일부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2년 10월에는 8달러까지 추락했다. 시스코의 몰락은 주변 IT기업들의 연쇄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뉴욕증시 역사상 최대 참사의 하나로 불리는 닷컴버블 붕괴는 시스코 주가의 이상 과열이 가져온 폭탄이었던 것이다.
뉴욕증시에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보면 작금의 AI 상승장이 닷컴버블 때와 유사한 측면이 적지 않다. 닷컴버블 당시 시스코와 작금의 엔비디아는 거시경제 측면에서 겹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금리 등 거시경제 환경이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기술주 주가는 금리에 민감하다. 기술주는 먼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 시점으로 당겨와 기업가치를 추정한다. 할인율 배수가 커 금리에 따른 기업가치 변동성이 크다.
닷컴버블 직전에는 미국 연준의 금리인하로 시장 유동성이 풍부했다. 미국 연준 FOMC는 1995년 7월부터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그해 25bp(1bp=0.01%포인트)씩 세 차례 금리를 낮췄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완화하는 가운데 경기 성장세가 둔화하자 선제적 대응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당시 금리인하는 침체가 현실화했을 경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인하(Recession Cut)가 아니라 경기 연착륙 유도를 위한 선제적 금리인하라는 점에서 ‘보험성 금리인하(Insurance Cut)’에 가까웠다.
이는 그동안 금리인상으로 인한 경제의 주름을 펴주겠다며 조만간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연일 밝히고 있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닮았다. 보험성 금리인하 기대감이 상존하는 가운데 AI발 생산성 혁신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르익은 점 등은 닷컴버블 시대와 판박이이다. 지표상 기술적 침체 징후조차 목격되지 않음에도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여전한데다, AI 기술혁명으로 노동생산성 개선 초입에 들어섰단 진단이 제기되는 점 등이 유사하다는 평가다.
1990년대 중후반 미국 경제는 IT 신경제 기반 ‘인플레이션 없는 고성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넘쳐났다. 성장주 기업가치는 늘 논란거리지만 풍부한 유동성은 당시 IT 업종 프리미엄을 정당화하는 버팀목이 됐다. 이는 1999년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인 '버블'로 이어졌다. 폭등세를 보인 세계 증시는 과도한 설비투자와 공급과잉으로 거품이 붕괴되자 폭락세로 돌변했다.
버블 붕괴는 시장 기대치와 기업 실적 간 괴리가 커질 때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1990년대 후반 주요 IT 기업은 풍부한 유동성으로 공격적인 설비투자(CAPEX)를 단행했지만 대중화 전 수요 정체라는 이른바 캐즘의 덫이 예상보다 길었다. 인터넷은 1990년대 중반 상용화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통신 인프라, IT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성장은 더뎠다. 이런 가운데 2000년 미국 뉴욕증시에서 나온 보고서 한 장으로 시장 ‘색깔’은 돌변했다. 기대감만으로 치솟았던 시스코 등 주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AI 혁명 선봉장에 선 지금의 엔비디아를 닷컴버블 붕괴 당시의 시스코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엔비디아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높아진 시장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넘어 ‘어닝 서프라이즈’를 연출하고 있다. 엔비디아 매출총이익률(Gross margin ratio)은 78.4%다. ‘경이로운 이익률’이다. 실질적인 기업가치를 가늠하는 지표인 잉여현금 흐름도 월등하다.
세상에 영원한 패자는 없다. 달이 차면 기울고 물도 많으면 넘친다. 엔비디아 ‘버블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