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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TSMC 모리스창· 장중머우(張忠謀)… 뉴욕증시 CEO 인물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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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TSMC 모리스창· 장중머우(張忠謀)… 뉴욕증시 CEO 인물 프로필

뉴욕증시 시가총액 대장주 엔비디아 젠슨황의 은인

TSMC 창업주 모리스창 (장중머우)이미지 확대보기
TSMC 창업주 모리스창 (장중머우)
요즘 뉴욕증시에서는 엔비디아가 대세다. MS 애플과 함께 뉴욕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반도체 업계의 한 모퉁이에서 어렵게 사업을 해오던 듣보잡 엔비디아가 일약 뉴욕증시의 영웅으로 부상한 데에는 TSMC 창업주 모리스창의 공로가 크다.

모리스창은 엔비디아 젠슨황이 무명이었을 때 그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고 큰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황이 설계한 제품을 생산할 곳이 없어 우왕좌왕할 때 그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고 파격적으로 생산 대행을 맡았다. 엔비디아의 성공은 모리스창의 선구안으로 부터 시작된 셈이다.
대만 모리스창의 중국 이름은 장중머우(張忠謀)이다, 그는 1931년 중국 닝보 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국공 내전과 중일전쟁 등을 피해 여러곳으로 이사했다. 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광저우 등 중국 내 6개 도시를 전전하며 학교를 9차례나 옮겼다.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1949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면서 작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로 인해 자신의 진로를 엔지니어로 바꾼 뒤 MIT로 편입한다. MIT에서 기계공학 학사 (1952년), 석사 (1953년)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실바니아 반도체 회사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TI에 다녔다. 그 와중에 주경야독으로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은행원이었던 그의 아버지의 은행 업무를 위해 난징, 광저우로 이사를 갔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피해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으로 피난을 갔다. 1941년 일본이 홍콩 구룡반도를 점령하자 당시 중국의 전시 수도 였던 충칭으로 갔다. 충칭의 난카이 중학에 입학해 공부를 했다. 이후, 일본이 패퇴하자 상하이로 옮겼다. 국공내전 때 다시 홍콩으로 향했다.

1958년 실바니아에서 3년동안 일한 장중머우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일자리 제안을 받고 이직했다. 그는 IBM 컴퓨터에 사용될 트랜지스터 생산 라인을 운영하는 임무를 맡았다. TI에서 근무하면서 숙적 IBM을 2위로 밀어낸 공고를 인정받아 1978년 그룹 전체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이는 당시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던 중국인 중 최고의 고위직이었다. .1983년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I)로 이적하여,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연구개발(R&D)을 담당했다.

1985년 중화민국 정부로부터 대만산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직 제안을 받고, 1985년 중화민국으로 옮겼다. 그는 중화민국의 산업 구조가 팹리스 업체로부터 제조를 위탁받아 생산을 전담하는 파운드리 사업이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1987년 56세의 나이에 TSMC(타이완반도체제조회사)를 창업했다. 창업 당시 자본금 2억 2,000만달러는 정부와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절반씩 유치했다. TSMC는 1990년대 민영화가 되었다.

2005년 74세에 고령을 이유로 일단 은퇴했다. 이후 2009년 금융 위기로 인해 매출이 급락하자 다시 회사에 복직했다. 복귀 이후 해고직원 복귀 및 투자 확대를 실시했다. 그의 투자 확대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8년 87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2018년 차이잉원 총통에 의해 APEC 중화 타이베이 대표로 임명되었다.

그가 만든 TSMC는 시스템반도체의 세계 1위이다. TSMC의 영어 풀네임은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Limited이다,. 이를 줄여서 흔히 TSMC라고 쓴다. 대만에서는 중국어 정체자로 台灣 積體電路 製造 股份有限公司라라고 표기한다.
TSMC는 전세계 파운드리의 60%상을 점유하고 있다. 전세계 1000여 기업들이 1만개 이상의 반도체 제조 의뢰를 하고 있다. 하고 있는 기업이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미디어텍, AMD, 브로드컴, 마벨 테크놀로지스 등이 TSMC의 고객이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반도체가 재편되면서 TSMC의 주가도 뜨고 있다. TSMC 시총은 전 세계 10위다.

TSMC는 설립 당시 대만 행정원 소속의 산업기술연구회에서 전액 출자했다. 이후 소수 지분으로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출자를 했다. 1992년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정부 지분은 주식시장에 전량 공개 매각됐다. 지금도 여전히 지분의 6.68%는 대만 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보유하고 있다

TSMC는 타 기업으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 등은 설계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으로 분류된다. 반면 TSMC는 설계는 하지 않고 팹만 운영하는 순수한 파운드리 업체이다.

TSMC는 대만의 호국신산으로 불린다. 반도체 호국신산의 구상은 옌자간(嚴家淦)이 주도한 것이다. 옌자간은 1905년 중국 장쑤성에서 태어났다. 1926년 상하이 세인트존스대학을 졸업한 후 푸젠성 건설청장으로 근무하다가 장제스의 국부천대 때 대만으로 건너가 행정장관·재정청장, 행정원 경제부장·재정부장·주석을 역임했다. 대만 경제 근대화의 주역이다. 1975년 장제스가 죽은 후 1978년까지 총통직을 맡았다.

옌자감은 미국에서 활약하던 모리스 창이라는 반도체 전문가를 영입해 TSMC라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를 만들도록 했다. 이때부터 옌자간은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렸다. 그가 살던 타이베이 집은 대만 반도체 아버지의 공적을 기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