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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캐즘(Chasm)의 덫" … 제프리 무어 vs 최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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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캐즘(Chasm)의 덫" … 제프리 무어 vs 최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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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
전기차 배터리 "캐즘(Chasm)의 덫"이 뉴욕증시 비트코인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그 탈출 논의가 활발하다,

뉴욕증시에는 '캐즘의 덫'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Geoffrey A. Moore)가 1991년 벤처산업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면서 만들어낸 경영학 용어다. 캐즘의 영어 원어는 Chasm이다. 지구 속 지층 사이의 깊은 간격(a deep split or gap in the earth)을 뜻한다. 땅을 파고 지구 속으로 들어가면 지층 간에 큰 공간이 있다. 지각변동 등을 이유로 지층 사이에 큰 틈이 생겨 서로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캐즘은 원래 지질학 용어였다. 지층 속 단절된 공간이 마치 새로운 첨단 제품이 나올 때의 시장 확산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말이다. 혁신의 새 제품이 나오면 초기에는 호기심 때문에 폭발적으로 팔려나간다. 그러나 일정기간이 지나 얼리 어답터들이 모두 소유하고 나면 그다음 소비가 급속하게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 간격이 바로 제프리 무어가 말하는 "캐즘의 허공" 또는 "캐즘의 덫"이다. 경영학에서는 첨단기술 수용론이라고도 한다. 제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일반인들이 사용하기까지는 한동안의 침체기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침체기가 너무 길어지면 새 제품은 빛을 보지 못하고 끝내 사장될 수도 있다.

첨단 제품의 초기 수요자와 그 이후 주류 시장의 수요자들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품을 출시한 초기에는 혁신성을 중시하는 이른바 얼리 어답터의 폭발적 인기를 끌 수 있다. 얼리 어답터의 수요만으로는 새 상품이 시장에서 완벽하게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대중의 주류 시장에서 팔려야만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기술이나 제품이 아무리 혁신적이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실용적이지 못하면 시장에서 성공하기가 어렵다. 첨단 기업은 때때로 이 초기 시장과 주류 시장 사이에서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거나 정체 현상을 겪게 된다.
캐즘은 원래 지질학 용어다. 지층에 균열이 생기면서 단절되는 것을 뜻한다. 제프리 무어가 1991년 스타트업 성장 과정을 캐즘에 빗대 설명하면서 경제·경영 용어가 됐다. 캐즘 현상은 주로 정보통신, IT 등 첨단 산업에서 발생한다. 해당 산업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제품과 서비스를 많이 선보이는데 소비자가 이에 적응하고 가치를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MP3 플레이어는 캐즘을 이겨낸 대표적인 제품으로 언급된다. 1990년대 말 MP3 플레이어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와 CD 플레이어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고 음원 다운로드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연이은 기술 혁신으로 캐즘의 덫을 넘어선 대표적인 사례다.

어느 날 e-book이 등장했다. 물리적 제한 없이 책을 전자기기로 읽을 수 있는 e-book이었다. e-book은 시장 초기에만 반짝하고 수요가 정체되면서 대중화되지 못하는 캐즘의 덫에 빠졌었다. e-book 콘텐츠는 현저히 부족했고, e-book을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을 만한 전자기기도 없었다. 그 캐즘의 덫을 돌파한 것은 아마존의 '킨들'이라는 e-book 전용 리더기였다. 아마존의 기술 혁신으로 이후 e-book 시장은 만개했다.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수적 성향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 본성은 기본적으로 변화하기를 싫어한다. 이 보수적 성향을 뒤바꿀 실용의 기술 혁신이 캐즘 돌파의 열쇠다.

요즈음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와 배터리에 '캐즘의 덫' 공포가 닥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탄소 중립의 바람을 타고 한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얼리 어답터들이 대부분 구매한 탓인지 최근에는 그 판매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LG엔솔·SK온·삼성SDI 등 배터리 3사는 물론 에코프로 등 배터리 소재 업체들도 실적 부진에 신음하고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BYD도 어렵다. 미국의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를 이끌고 있는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는 전기차가 캐즘의 덫에 빠져 공멸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갑자기 줄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캐즘의 덫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테슬라와 BYD 등이 기술 혁신보다는 가격 인하의 무리수를 쓰면서 전기차와 배터리가 함께 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타바레스 CEO는 가격 인하의 치킨 게임을 멈추지 않으면 전기차와 배터리가 피바다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기차 전환에 가장 앞서 속도를 내던 포드는 최근 수요 부족으로 전기트럭 'F-150 라이트닝'을 생산하는 생산라인의 인력을 대폭 감원했다. 포드는 F-150 라이트닝 생산라인에서 모두 1400명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F-150 라이트닝은 출시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시승하며 “사고 싶은 차”라고 말했을 정도로 포드 전기차 전략의 핵심으로 꼽혀왔다. 최근 수년간 전기차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던 세계 최대 렌터카 업체 허츠(Hertz)는 보유 전기차 2만여 대를 팔겠다고 밝혔다. 일본 차들도 전기차 인기 하락에 고심하고 있다. 토요타는 아예 전기차 비중을 30% 이하로 줄이는 전략을 본격화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캐즘 돌파의 선봉을 자처하고 나섰다. 침체가 깊어지고 있는 배터리와 전기차 업계의 현황을 점검하고 생태계 전반의 지원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최근 전기차 전용 공장인 기아 '오토랜드 광명'(옛 소하리 공장)을 찾아 현장 간담회를 하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기재부·산업부·환경부 관계 국장들이 배석했다. 업계 측에서는 기아 송호성 사장, 현대차 김동욱 부사장, LG에너지솔루션 박진원 부사장,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강남훈 회장,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 나승식 원장 등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 업계 인사들은 "전기차에 대한 안전 우려가 과도하게 형성돼 있는 만큼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며 "전기차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올해 말로 일몰되는 친환경차 구매 세제혜택 연장을 비롯해 △충전 인프라 고도화 △'사용후 배터리' 통합 지원체계 △친환경차 인재 양성 등의 정책을 건의했다.

최 부총리는 "전기차 시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탄소 중립 흐름에 따라 전기차 전환의 방향성은 지속될 것"이라며 "전기차는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이자 투자·일자리 파급효과가 큰 신성장동력인 만큼 시장 둔화에 대해 위기감을 갖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현장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전기차 구매 혜택, 투자 인센티브를 비롯해 생태계 전반에 대한 지원 방안을 다양하게 검토해 개선하겠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캐즘의 덫을 돌파하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정책 방향이다. 구매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도 필요하지만 현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수 대중이 전기차와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실용적 기술 혁명이다. 전기차 충전의 불편 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고서는 배터리와 전기차에서 캐즘의 덫 탈출이 쉽지 않을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