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서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크게 약진했다. 그 충격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선언해 30일(현지 시각) 선거가 시작됐다. 프랑스에서 이번에 극우 정당이 집권할 게 확실하다고 프랑스 언론이 보도했다.
프랑스 총선은 2차에 걸쳐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하면 당선이 확정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등록 유권자의 12.5% 이상을 득표한 후보끼리 다음 달 7일 2차 투표를 치른다.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한 집권 르네상스당이 이끄는 선거연합 앙상블, 유럽의회 선거에서 1위를 거둔 극우 국민연합(RN), 좌파 성향 4개 정당 연합인 신인민전선(NFP), 정통 보수 정당인 공화당 등이 경합 중이다.
극우 RN은 이달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득표율 31.4%로 압승했고, 프랑스 총선 사전 여론조사에서 줄곧 35~36%대의 지지율로 부동의 선두 자리를 유지했다. RN은 1995년생으로 올해 29세인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이끌고 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프랑스에서 20대 총리가 등장할 수 있다. 그는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한다. 그는 또 이슬람 이데올로기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정치체제로 운영된다.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거나 다수 연합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 총리를 맡는 게 관행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임기가 절반 정도 남아있어 ‘동거 정부’가 출현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 자문업체 유라시아 그룹은 프랑스 총선 결과가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브렉시트(Brexit)와 같은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분석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2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가 대전환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극우 정당이 정치권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 기후변화 대응이 다시 느슨해지고, 자국 산업 보호정책이 강화될 수 있다. 이때 중도 또는 진보 정당도 민심의 변화를 의식해 ‘우클릭’하게 마련이다. 지난달 말 독일을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은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을 주창했다. 마크롱은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유럽만 순진하게 가만있을 수 없다며 국방과 우주 등 핵심 부문에서 바이 유러피언 전략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지금 우경화하고 있다. 미 대선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조 바이든 대통령에 줄곧 앞서 나가고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에는 60% 이상 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든은 인프라재건법 등을 시행하면서 세부 규정을 통해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도로·다리·철도·항만 등을 신축하거나 개축할 때 미국에서 생산된 자재와 장비 사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미국산 제품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정부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준다. 미국 내 생산 부품 비율이 2022년에 기존 55%에서 60%로 올라갔고, 2024년에는 65%, 2029년에는 75%에 달해야 이 기준이 충족된다.
트럼프가 승리하면 미국과 유럽이 동시에 우경화하면서 서로 충돌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또 ‘중국 때리기’ 경쟁을 할 게 확실하다. 이는 국제 질서의 변화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일대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세계 질서 재편 과정에서 ‘국수주의’ 국가의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반(反)세계화’ ‘반(反)무역’ 역풍을 헤쳐 나가야 한다. 나라 밖에서 지금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