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대를 올라봐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백운대에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대거 출현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였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이상고온 현상으로 초여름부터 한여름 날씨가 나타나면서 러브버그 출몰 시기도 작년보다 열흘 이상 빨라졌다고 한다. 러브버그는 중국 남부와 대만, 일본 오키나와에서 1년에 두 번, 5월과 9월에 크게 발생하는데 국내 첫 러브버그는 재작년 여름 수도권 서북부 일대에서 발견됐다. 작년에도 북한산 백운대 정상을 러브버그가 까맣게 뒤덮은 적이 있는데 올해엔 일찍 찾아든 폭염으로 인해 더 일찍 출몰했다 하니 그 현장을 직접 보고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러브버그는 인체에는 해가 없고 오히려 진드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어 ‘익충(益蟲)’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알에서 부화한 유충은 성충이 될 때까지 낙엽층 아래에서 산다. 낙엽층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에 주로 산에 서식하며 산에서 성충이 된 러브버그는 불빛을 보고 도심과 주택가로 몰려든다. 러브버그의 생존 기간은 수컷은 3~5일, 암컷은 7일 정도라고 한다. 짧은 시기 동안 개체 수가 확 늘어나고, 짝짓기 시기가 되면 암수가 서로 붙어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잘 띄게 된다. 러브버그는 최초 발생 후 2~3주가 지나면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인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다고 한다. 이에 환경부는 7월 초쯤 되어야 러브버그가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백운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등산로를 따라 러브버그의 사체들이 즐비하다. 아무리 인체에 해가 없고 익충이라 해도 반갑지 않은 불청객임엔 틀림없다. 여름이 깊어져 꽃이 귀한 계절이기는 해도 러브버그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일 이른 시간이라 모처럼 줄도 서지 않는 호젓한 백운대 정상에 좀 더 오래 머무르며 북한산의 경관을 즐겼으리라. 하지만 곧 공연히 애꿎은 벌레에 괜한 핑계를 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레가 있으나 없으나 꽃은 피고 지고, 북한산의 경관은 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평일인 탓도 있긴 하겠지만 러브버그의 출몰 소식 때문인지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등산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 산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며 찬찬히 경관을 감상하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산을 오르며 본 꽃들을 가만히 헤아려 본다. 탐방로 들머리에서 보았던 노란 각시원추리와 이수암에서 보았던 분홍달맞이꽃 그리고 산딸나무꽃과 노루오줌, 은꿩의다리, 돌양지꽃을 보았다. 그중에도 백운대를 오르며 보았던 은꿩의다리꽃과 돌양지꽃은 흙 한 줌 없는 바위틈에 당당히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나를 감동시켰다. 돌양지꽃은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해발 500m 이상 산속 바위틈에서 서식한다. 양지꽃속은 국내 2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양지에서 핀다고 해서 ‘양지꽃’, 바위틈에서 살아서 ‘돌양지꽃’이라고 부른다. 돌양지꽃은 암석정원, 바위틈에 연출하면 입체적인 묘미를 감상할 수 있다. 꽃말이 ‘사랑스러움’ ‘그리움’ ‘행복의 열쇠’다. 어느 곳에 핀들 사랑스럽지 않은 꽃이 있으랴마는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거든 황금빛으로 빛나는 돌양지꽃을 꼭 찾아보기 바란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