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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일본 엔화 환율 발작 대체 어디까지? 1985 플라자 합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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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일본 엔화 환율 발작 대체 어디까지? 1985 플라자 합의의 교훈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요즘 일본 엔화 환율이 심상치 않다. 일본 돈인 엔화의 가치가 추락하면서 달러당 엔화 환율이 크게 오르고 있다. 1986년 12월 이후 37년6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상태다.

엔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보면서 1985년의 플라자 합의가 연상된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에 플라자호텔(Plaza Hotel)이 있다. 미국 뉴욕시 5번가 768에 소재한 호텔이다. 뉴욕증시가 있는 다운타운에서 5번 애비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58번부터 센트럴파크가 나온다. 플라자호텔은 이 센트럴파크의 초입에 위치해 있다. 플라자호텔 인근에는 카네기홀과 애플의 초대형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7년에 지어진 매우 유서 깊은 호텔이다.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던 크리스마스 코미디 '나 홀로 집에 2(Home Alone 2)'를 촬영한 무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비틀스가 1964년 미국 투어로 처음 방문했을 때도 바로 이 플라자호텔에서 묵었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5개국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선진 5개국의 재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회의를 소집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베이커가 주도했다. 그때 미국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로 국가부도 직전의 위기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5개국 재무장관들은 그 회의에서 ‘협조 개입을 통한 달러 약세 유도’라는 그 이전까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밀 합의를 했다. 5개국 정부가 목표 환율을 정해 놓고 그 선에 이를 때까지 미국 달러화를 매각하고 일본 엔화는 사 모으기로 담합한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다. 경제학계에서는 뉴욕 플라자호텔 회의에서의 합의를 줄여 그냥 ‘플라자 합의’라고 부른 것이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이 플라자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강력한 압박 수단을 동원했다. 미국이 그때 꺼내든 압박 카드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그 첫째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서의 탈퇴였다. 당시 GATT는 무역 규제를 억제하는 전 세계의 유일한 끈이었다. GATT 탈퇴는 중상주의 보호무역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협박이었다. 둘째는 미국 달러화의 무제한 발행이다. 달러의 공급량을 무한대로 늘려 부족한 재정을 메꾸겠다는 으름장이었다. 달러가 기축통화이므로 가능한 협박이었다. 셋째는 지구촌 경찰로서의 임무 포기였다. 적자 해소를 위해 소련과 군비 경쟁을 더는 벌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GATT 탈퇴, 달러화 무제한 발행, 소련의 군사력 팽창 등은 서방 선진국들이 당시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미국은 이에 앞서 1971년 베트남전쟁으로 거덜이 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브레턴우즈 체제의 기본축인 미국 달러화 금 태환 제도를 취소한 적이 있다. 달러를 미국 은행에 제시하면 언제든지 온스당 35달러의 비율로 바꿔주기로 한 것이 달러금태환제도다. 2차대전 직후 전승국 대표들이 브레턴우즈 골짜기에 모여 새로운 국제통화 체제를 발족하면서 달러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어준 데에는 미국이 달러화의 금 태환을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그러나 1971년 자국 경제가 어렵게 되자 금 태환을 독단적으로 중단해 버리고 말았다. 이 조치로 미국 경제는 크게 호전됐지만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심각한 경제 공황을 겪어야 했다.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경제 공황도 그 발단은 미국의 금 태환 중단에서 시작됐다.

레이건 대통령이 내세운 세 가지 협박 카드는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정지보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쇼크가 훨씬 더 큰 위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85년 9월 22일 미국 등 선진 5개국은 플라자 합의를 하기에 이른다. 달러 금 태환 정지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영국·프랑스·일본·독일 등 서방 선진국들로서는 미국의 협박을 무조건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플라자 회담 직전 일본 엔화의 달러당 환율은 250~260엔 선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5개국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당 환율을 석 달 만에 80엔대까지 내렸다. 일본 돈인 엔화 가치가 90일 사이 무려 3배 이상 뛴 것이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세계 경제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미국은 달러 약세에 힘입어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미국의 경상 및 무역 수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레이건 대통령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을 다시 살려냈다. 지금도 미국 사람들은 레이건 전 대통령을 경제적 치적이 가장 두드러진 지도자로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너무 존경한 나머지 수도 워싱턴DC의 관문인 내셔널 공항의 이름도 레이건 공항으로 바꾸어 버릴 정도다. 실제로 레이건 대통령 시절 8년을 거치면서 성장률·고용지수·경상수지·재정건전도 등 미국의 거시경제 지표가 좋아졌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적 성공은 플라자 합의에서 연유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엔고 때문에 잃어버린 23년이라는 길고 긴 고통이 시작됐다.

요즈음 일본 엔화 환율은 달러당 160엔 선이다. 환율이 너무 높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플라자 회담 당시의 환율인 달러당 260엔에 비한다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은 2차대전 패망 이후 오랫동안 수출 확대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환율을 올려왔다. 환율을 꾸준히 상승시킴으로써 수출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왔던 것이다. 일본의 전후 경제 기적은 엔화 환율 상승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일본은 지금도 그 향수를 갖고 있다. 대장성과 일본은행 관계자들 중에는 잃어버린 30년에서 근본적으로 탈출하려면 플라자 합의 직전인 달러당 260엔까지 엔화 환율을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다. 기축통화국이자 발권국인 미국의 협조 없이는 엔화의 무한정 환율 상승은 불가능하다. 지금 미국은 일본 엔화 환율의 상승을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하는 분위기다. 엔화 환율 상승은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달러 강세는 미국의 당면한 가장 큰 고민인 인플레를 억제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엔화 환율 상승을 언제까지나 방치하기는 어렵다. 달러의 지나친 강세는 미국의 경상수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흔드는 수준까지 엔화 환율이 오르기 전에 그 흐름을 차단할 수 있다. 무역수지를 특히 중요하게 간주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 엔화 환율 대조정 시기가 훨씬 더 빨라질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