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은 결국 기억에 남은 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므로 진술을 통해 구현된다. 사람과 물건 중 더욱 객관적이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기억은 왜곡될 수도 있고 사람은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연히 물증이 인증보다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뇌리에 남아있는 범죄의 흔적을 언어로 표현한 진술 증거로는 피의자신문조서, 피해자진술서, 참고인진술조서 등이 있다. 미덥지 못하고 불완전한 진술에 증거능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요구된다.
우선 임의성이 인정되어야 증거능력이 있다. 즉 고문, 폭행, 협박, 기망, 등을 사용해서 받아낸 진술이 아니라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전문진술이 아니어야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범죄 사건의 체험자가 직접 진술하는 것을 원진술이라 하고, 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바를 진술하는 것을 전문진술이라 한다.
예를 들면,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지인의 진술은 전문진술이 된다. 이러한 전문진술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굳이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 범죄를 당했다고 주변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알릴 필요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범죄를 당한 척 거짓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두 사람이 짜고 허위 증거를 만들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진술은 이토록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음에도 성범죄에 있어서 진술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물증이 없으므로 유일한 증거인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진술에 의해서 기소와 불기소, 유죄와 무죄가 결정되는 것이다.
한편 진술에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증거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증명력이 인정되어야 하고 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즉 진실처럼 보여서 믿겨져야 한다는 말이다. 신빙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일관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밝혀진 사실에 부합하고, 허위진술을 할 동기가 없는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증명력을 판단하는 방법에 대해서 법에서는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한다. 즉 판사는 자유롭게 증거의 증명력을 판단할 수 있는 재량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무제한적인 재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논리칙과 경험칙에 의해서 제한된다.
논리칙이란 경험과 무관하게 논리적 사고와 추리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법칙을 말한다. 경험칙은 법관이 다수의 판결을 통해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객관성이 담보된 일종의 개연성 있는 법칙이 되는데 보통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변경된다.
이러한 경험칙에 치우친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즉 개연성이 없거나 비합리적이고 이례적이어도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성인지감수성에 의하면 진술이 논리에서 벗어나거나 모순되어 믿기 어려워도 신빙성이 인정될 수 있게 된다. 즉 증명력 판단에 대한 판사의 재량에 한계를 설정하였던 것이 성인지감수성에 의해서 무력화된 것이어서 비판을 받고 있다.
피의자, 피해자의 진술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조서로 작성된다. 이때 만들어진 조서를 바탕으로 기소와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고 공판절차에서 유죄와 무죄 판결을 하게 된다. 사실상 그 이후에는 진술할 기회가 별로 없으며, 종전과 다른 진술을 하면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진술조서 등의 증거자료가 만들어지는 경찰조사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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