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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래퍼 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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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래퍼 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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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FOMC 금리인하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차기 대권 유력 주자의 이 같은 개입은 연준 FOMC의 행보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연준 FOMC의 대선 전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해 "어쩌면 그들이 대선 전에, 11월 5일 전에 할 수 있겠다. 그것은 그들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월을 정조준해 "만약 대선 전에 금리인하를 단행한다면 대통령 취임 이후 연준의 책임자를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파월의 후임으로는 래퍼 곡선으로 널리 알려진 경제학자 아서 래퍼 등 3명의 명단을 공식 거론했다. 후임자 이름까지 나온 만큼 트럼프의 파월에 대한 금리인하 반대 경고는 단순한 말의 협박을 넘어선 대통령 당선 가능성 1위 후보의 실질적인 압력으로 해석되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파월을 내치고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거론한 인물은 아서 래퍼 전 시카고대 교수와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그리고 케빈 해싯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등이다. 래퍼 교수와 함께 차기 연준 의장 후보에 오른 워시 전 연준 이사는 36세에 최연소 연준 이사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경제특별보좌관을 지낸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1기 시절에도 연준 의장 후보로 거론됐다. 해싯 전 의장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트럼프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제롬 파월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연준 의장이 됐다. 이듬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트럼프는 파월 의장을 미국의 ‘적(enemy)’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중에서도 특히 래퍼 전 교수를 주목하고 있다. 이 신문은 트럼프 캠프 경제참모인 스티브 무어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래퍼 교수를 만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기 연준 의장 인사 제안을 전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래퍼 교수는 세율을 낮췄을 때 세수가 높아지는 구간이 있다는 이른바 ‘래퍼 곡선’ 이론으로 유명하다. 세율을 낮추면 일정 구간에서는 오히려 세수가 늘어난다는 것이 래퍼 곡선 이론의 핵심이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9년 감세 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자유 메달을 받기도 했다. ‘래퍼 곡선’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당시 ‘레이거노믹스’의 이론적 토대다. 레이건 정부는 당시 래퍼의 건의에 따라 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법인세율은 48%에서 34%로 내렸다.

래퍼 교수는 젊었을 때부터 많은 공화당 정부 인사들의 자문 역할을 맡았다. 닉슨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사이먼, 조지 슐츠 등이 그의 자문을 받았다. 래퍼 박사가 본격적으로 정권의 일원으로서 경제정책에 개입하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서였다. 레이건 대통령의 두 임기 동안 래퍼 교수는 경제정책자문회의의 멤버였다. 래퍼 교수는 레이건 정부의 감세 정책인 ‘경제 회복 세법(ETRA: Economic Recovery Tax Act)’을 기획했다.

1981년 시작된 ETRA는 3년간 순차적으로 근로소득세 한계 세율을 25%포인트 인하하고 불로소득의 최고 한계 세율도 7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이다. 자본소득세율도 28%에서 20%로 인하했다. 래퍼 교수는 이러한 감세 정책이 큰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세수부터 우선 살펴보면 1983년 이전 4년 동안 연방 소득세 수입은 연평균 2.8% 감소했지만, 감세 정책이 본격 효과를 나타낸 1983~1986년 연방 소득세 수입은 연평균 2.7% 증가했다.

래퍼 교수는 최근에도 트럼프의 감세 정책을 찬양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재선된다면 세율 인하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래퍼 교수는 한 유튜브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연준 의장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받았다. 래퍼는 이 질문에 대해 세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가 연준의 대차대조표의 엄격한 관리다. 즉 ‘연준의 자산을 합리적인 금액으로 낮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연준은 절대로 금리를 설정하려 들어서는 안 되며 시장의 금리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래퍼 교수는 셋째로 긴축으로의 강력한 리더십을 역설했다. 총체적으로 볼 때 FOMC 의장으로서 래퍼의 정책 방향은 자유주의 시장 메커니즘의 유지와 재정지출 억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1974년 12월 4일 미국 워싱턴DC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유력 인사 4명이 식사를 하며 미국 세금 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당시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인 도널드 럼즈펠드와 그의 보좌관 딕 체니, 월스트리트저널 부편집장 주드 와니스키 그리고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 아서 래퍼였다. 럼즈펠드가 엉망이 된 경제를 되살릴 방도를 두 경제전문가에게 물었다. 래퍼 교수는 냅킨에 그림을 그려가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가 사용한 냅킨은 현재 국립미국사박물관에 지금도 소장돼 있다.

뒤집은 알파벳 U자처럼 생긴 래퍼 곡선은 소득세율이 높아지면 국가의 세수도 증가하다가 일정 선을 넘으면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래퍼는 이런 현상은 지나치게 세율이 올라가면 근로 의욕이나 투자 의욕이 줄어들어 세원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반대로 세율을 낮추고 규제를 줄이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래퍼 곡선은 세율과 조세 수입 간에 역U자형 관계가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 즉 세율이 0%면, 세 수입도 0이 된다. 세율이 100%가 되면 아무도 일을 하려 하지 않게 된다. 조세를 부과할 소득이 0이므로 조세 수입도 0이 된다. 세율이 증가하면 조세 수입도 증가하게 된다.

세율이 어느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조세 수입은 오히려 감소하기 시작한다. 세율이 아주 높으면 애써 벌어봤자 자기 주머니에 남는 돈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구태여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총생산이 감소해 조세를 부과할 소득도 줄어든다. 래퍼 곡선은 현실 정책에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세율을 높여 조세 수입이 극대화되는 지점을 지나야 세율을 낮춰 조세 수입을 늘릴 수 있다. 문제는 그 지점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레이건 행정부는 법인세율을 48%에서 34%로, 소득세율은 70%에서 28%로 대폭 인하했다. 그 결과 전임 지미 카터 정부와 비교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연평균 성장률은 3.2%로, 8년 전의 2.8%보다 높았다. 실업률도 7.2%에서 5.5%로 내려갔다. 반면 미국 국가부채는 레이건 취임 직전인 1980년 국내총생산 대비 26%에서 퇴임 전해인 1988년 41%까지 늘어났다.

트럼프의 압박 속에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인하에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