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벤츠 전기차 화재로 전손 피해를 본 차량은 70여 대로 추산됐다. 화재 이후 국내 완성차 시장에선 전기차 판매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1년 이상 대기해야만 했던 특정 전기차 모델에 대한 계약 취소가 잇따른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벤츠코리아의 대책은 효과가 없었다.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도, 벤츠에 대한 불편한 여론도 전혀 잠잠해지지 않았다. 이후 벤츠코리아가 전기차 화재 피해자들에게 신형 E클래스 세단을 최대 1년간 무상 대여한다고 후속 조치를 내놨지만 오히려 반감만 샀다. 피해 주민들과 차량 관련 주요 카페나 블로그에선 "무상 대여로 벤츠가 화재 사고를 넘어가려고 한다" "배상을 해야지 무슨 차량 대여?" 등 비판적인 의견들이 나왔다.
지금은 다르다.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전기차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벤츠 전기차 외 다른 브랜드 전기차에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 맏형 격인 현대차·기아가 전기차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며 포비아 확산 차단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례적인 일이다.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29일 참고자료를 내고 "최근 전기차 화재의 언론 보도가 늘어나며 ‘전기차는 화재가 많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승용 전기차에서 고전압 배터리만의 원인으로 화재가 난 사례는 더 적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는 이번 화재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참고자료를 통해 전기차 화재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화재 사고 진상과 원인 그리고 피해 보상이 확실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무조건적인 불안감 확산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게 현대차의 고민으로 해석된다.
지금은 캐즘을 겪고 있지만 언젠가 전기차 시대가 온다는 것에 이견을 다는 이들을 찾기 힘들다. 이번 기회를 전기차 안전 문제에 대한 확실한 점검 기회로 삼아야 한다.
완성차 수입업체는 물론 정부도 국민 불안을 불식하기 위해 전기차 안전과 관련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업체들은 판매 실적보단 배터리 실명제 등을 통해 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정부 역시 관리감독과 제도 개선에 나서야만 한다. 공포감 조성보단 확실한 점검이 필요할 때다.
유인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inryu00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