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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중동 전면전 vs 뉴욕증시 대공황 역사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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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중동 전면전 vs 뉴욕증시 대공황 역사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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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당시 뉴욕증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르 상대로 레바논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느닷없이 "대공황 경고" 발언을 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강연에서 “1920년대와 2020년대 사이에는 두 가지 구체적인 유사점이 눈에 띈다”면서 지금의 세계 경제가 100년 전의 대공황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나섰다. 라가르드 총재는 2011년 7월 5일부터 2019년 9월 12일까지 8년 동안 IMF 총재를 지낸 인물이다. IMF 총재로서 세계 금융을 직접 이끌어온 인물인 만큼 그의 대공황 경고에는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이스라렝이 레바논으로 들어가 지상전을 시작하면서 중동 전면전의 공포가 고조되는 것도 대공황 경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1920년대와 2020년대의 유사점으로 우선 ‘글로벌 통합 무역 질서의 쇠퇴’를 꼽았다. 그는 “19세기 말 영원할 것 같던 개방적인 경제 질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끝났다”며 “경제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세계화의 급속한 해체가 뒤따랐다”고 설명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그러면서 지금 현재 세계 경제는 “빈번한 공급 충격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한 환경에 맞춰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가 바뀌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 등이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둘째 유사점으로 ‘신기술의 혁신 열풍’을 들었다. 1920년대 내연기관과 컨베이어벨트식 조립 라인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듯 현재 인공지능(AI) 열풍이 핀테크 기업과 디지털 독점 현상을 낳고 있다고 라가르드 총재는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혁신 열풍이 대공황의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비이성적인 과대망상이 뉴욕증시 등 전 세계 주식시장의 거품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1920년대 기업 특허 인용 건수가 1% 늘어날 때마다 증시가 0.26% 상승했다”면서 “지금 세계 경제도 인공지능 열풍으로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보았다. 라가르드 총재는 특히 빅테크의 시장 독점, AI의 급격한 발전 등은 대공황의 새로운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공황은 1929년 10월 24일 시작됐다. 목요일 아침 뉴욕증시의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공황이 터진 것이다. 목요일의 주가 폭락을 신호탄으로 일어난 참사라고 해서 흔히 검은 목요일 또는 블랙 목요일 공황이라고 일컫는다. 뉴욕증시의 주가 폭락은 전 세계 기업들의 도산, 대량 실업, 그리고 글로벌 디플레이션 등으로 확산됐다. 이 대공황을 영어권에서는 'Great Depression'으로 부른다. 세계 역사상 가장 길었던 경제 위기다. 1920년대 말부터 2차 대전이 터졌던 1940년대까지 지속됐다.
대공황 기간 중에 전 세계 GDP는 25% 이상 떨어졌다. 산업 생산은 더 심각한 타격을 입어 50%까지 감축됐다. 실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미국 등 각국 정부는 고용 관련 통계 작성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그런 이유로 대공황 시기의 공식 실업률은 아무도 모른다. 몇몇 학자들의 추론에 따르면 1933년 실업률이 25%를 넘었고, 1940년대까지도 14%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뱅크런으로 도산하는 은행이 줄을 이었다. 거리에는 먹을 것을 구걸하는 거지들로 넘쳐 났다.
대공황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는 엄청난 호황이었다. 대공황 같은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 경제 전문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1918년 1차 대전이 끝나면서 글로벌 경제는 전후 복구 붐에 힘입어 크게 성장했다. 뉴욕증시 주가 폭락 약 한 달 전인 9월 20일 영국 최대의 투자자이자 기업인이었던 클래런스 찰스 해트리(Clarence Charles Hatry)와 그의 동료 몇 명이 사기 및 위조죄로 투옥되면서 런던 증시가 폭락한 적이 있다. 그해 10월 중순 해트리(Hatry)그룹이 결국 파산했다.

뉴욕증시의 검은 목요일 주가 대폭락은 해트리 그룹 파산 직후에 일어났다. 바로 이 점에서 해트리 그룹의 금융사기 사건과 파산을 대공황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해트리 파산에만 돌리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금융시장에서 사기 사건과 파산은 해트리 이전에도 수시로 터졌다. 해트리의 파산 규모가 그 이전 사건보다 특별히 큰 것도 아니었다. 해트리 파산이 대공황의 문을 여는 하나의 방아쇠가 되었을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1차 대전 이후 계속된 경기 과열과 주가 급등으로 인한 시장 균형의 파괴가 대공황의 더 핵심적인 원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전쟁 이후 경제 구조의 불안정성이 대공황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대공황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딱 부러지게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학자들마다 원인 진단도 다르다. 네오케인지언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무절제한 시장경제의 근본적인 한계가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모든 소비가 우연히 감소했다는 식의 논의도 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등에 기인한 보호무역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던 정부가 원인이었다는 이론도 존재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프랑스 등 열강들은 금본위제도로 돌아갔다. 금의 보유량만으로 화폐를 찍어내다 보니 유통 통화량이 부족했다. 그 결과 시장이 위축됐다. 1928년 말부터 전 세계 실물 경기 지표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과도한 보호무역론(Protectionism)도 악재가 됐다.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 Thy Neighbor Policy)은 보호무역의 상징이었다. 라가르드는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당시의 보호무역과 빼닮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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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


독일의 초인플레이션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영국·프랑스 등은 1차 대전 후 독일의 경제적 부흥을 막고자 베르사유 조약에서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했다.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에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바이마르는 배상금을 물기 위해 통화를 증발했다. 결국 독일 경제는 끔찍한 초인플레이션으로 박살이 났다. 연쇄적으로 유럽 경제까지 영향을 받게 됐다. '구산업'(광산업 등 1, 2차 산업)에서 '신산업'(소비재 등)으로의 변혁도 대공황을 유발하는 데 한몫했다. 라디오·TV 등 새로운 기술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주가가 과도하게 오른 것이다. 라가르드는 당시 신기술에 편승한 주식 투자가 오늘날 인공지능을 앞세운 닷컴 버블과 흡사했다고 보고 있다.

요즘 뉴욕증시를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은 미국 연준 FOMC의 빅컷 금리인하에 들떠 있다. 금리인하는 기업의 이자 부담을 경감하고 나아가 산업계 전반의 실적을 호전시킬 것이다. 실적 호전의 기대는 증시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빅컷 금리인하에 뉴욕증시가 환호하는 이유다.

문제는 지금 뉴욕증시의 밸류에이션이 역사상 최고 수준에 와 있다는 점이다. 등산을 할 때에도 내리막이 더 위험한 법이다. 올라갈 때는 힘은 들어도 쉬어갈 수 있다. 내려갈 때는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과도한 거품은 공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ECB 라가르드 총재의 경고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1929년의 대공황은 예고도 없이 한밤의 도둑처럼 찾아왔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