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철저히 낮은 확률의 상품을 판매하는 전략은 여전히 잘 통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리니지', '오딘', '브라운더스트2', '니케', '에버소울', '블루 아카이브' 등 인기 있는 게임 태반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늘상 이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이라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초기 부작용은 꾸준히 개선돼왔고 공정위의 제재와 게임 제작사들의 시스템 개선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는 게임 속 뽑기의 확률을 공개하는 것이 의무화 돼 있어서 애초에 제작사들이 말도 안 되는 낮은 확률을 자제하고 있기도 하고, '천장' 시스템을 제공하는 등 자정 노력도 상당하다.
게임에서도 일정 횟수 이상 가챠 뽑기를 시도하면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한다. 일종의 확정 교환권이다. 여기에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출석 이벤트, 퀘스트 이벤트 등을 통해 재화를 획득, 현금 결제 없이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최근의 게임들은 이렇게 무과금러도, 과금러도 게임을 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기에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한 반발이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는 왜 유독 게임에게만 가혹할까? 케이팝 시장을 살펴보자. 전설의 민희진 기자회견에서도 언급됐지만 엔터사들은 아이돌의 포토카드를 음반(CD)에 랜덤으로 넣어 판매한다. 그리고 인기 인는, 소위 그룹 멤버 중 '간판' 아이돌의 포토카드가 유독 인기 있어서 그 카드를 얻기 위해 동일한 앨범을 반복적으로 구입하게 만든다. 또 가수 사인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입장권도 랜덤으로 제공되기에 팬들이 수십 장씩 앨범을 사게 만들고, 상당 수의 앨범은 버려지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이것을 문제 삼고 고치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기자가 꽤 오래 전 케이팝 관련해서 취재하던 중 베트남에서 온 앳돼 보이는 여학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케이팝의 팬이라는 그녀는 좋아하는 남성 아이돌 팬 사인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왔고, 보이 그룹 CD 여러 장을 구입한 터였다. 동일한 앨범을 가장 많이 산 게 몇 장이냐고 묻자 그 학생은 50장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유통되는 랜덤 포토카드(포카)는 각종 모임이나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유통된다. 특히 '번장'이라 부르는 번개장터에는 포토카드 매물이 엄청나게 등록돼 있어 희소성 있는 유명인 포토카드가 용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이 폭력적이라며 살인사건만 나오면 가해자가 즐겼던 게임을 경쟁적으로 보도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히트한 잔혹 드라마 '오징어게임'이나 조폭 영화들이 거론되진 않는다.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이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이 비정상적인 엔터 산업은 한류의 주축으로 조명되기만 할 뿐 자정 노력조차 없다. 이제 기울어진 잣대도 조율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