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불광동의 한 생태공원에서 숲 해설을 했다. 공원 모퉁이에 진홍색으로 물든 화살나무를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나무 이름을 물었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은 자신의 시 ‘풀꽃 2’에 이렇게 썼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연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웃이나 친구가 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숲에 대해 조금은 더 알 필요가 있다.
가을 숲을 알록달록 물들이는 걸 모두 단풍나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단풍나무 외에도 대부분의 활엽수는 가을이 되면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어 화려하게 숲을 수놓기 때문이다. 신나무, 옻나무, 붉나무, 화살나무, 복자기나무, 담쟁이덩굴은 붉은색으로 물들고, 은행나무, 아까시나무, 피나무, 호두나무, 생강나무, 자작나무는 노란색으로 물든다. 단풍나무만 해도 종류가 매우 많다. 단풍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128종류나 되며 우리나라엔 15종 정도가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단풍나무 잎은 손바닥처럼 생겼고 붉은색으로 물드는데, 은단풍, 당단풍, 중국단풍, 고로쇠나무, 신나무 등이 모두 단풍나무 속에 속한다. 다행스럽게도 잎의 모양이 나무마다 제각각이라 조금만 눈여겨보면 구별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당단풍잎은 잎이 9~11개로 갈라져 있다. 다른 단풍나무 잎에 비해 통통한 편이며 선명한 붉은색을 띤다. 고로쇠나무 잎은 5개로 갈라져 오리발을 닮았는데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는 게 특징이다. 신나무 잎은 길쭉하며 잎이 세 갈래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복자기나무 잎은 가지에 잎이 세 개씩 달리는 게 특징이며 잎의 넓은 쪽에 톱니가 있다. 그런가 하면 도시의 공원 같은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국단풍은 세 갈래로 나뉘는데 오리발 모양이다. 이 정도만 알고 단풍놀이에 나서도 단풍을 바라보는 시선이 훨씬 깊고 그윽해질 것이다.
산을 오를수록 단풍은 더 붉고 화려하게 타올라 등산객들의 입에선 연신 탄성이 터져 나온다.
선인봉, 자운봉의 화강암 절벽 틈에 단풍이 수를 놓은 듯 점점홍으로 찍혀 있다. 올해는 지각 단풍에다 늦더위 탓인지 잎끝이 말라버려 성한 단풍이 별로 없다. 단풍의 감상법은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라 한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잎의 상처가 보이고 너무 멀리서 바라보면 단풍의 고운 색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은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고 노래했지만, 단풍은 나무들의 겨울 채비의 일환이다. 단풍이 지고 나면 곧 추운 겨울이 들이닥칠 것이다. 단풍도 꽃과 같아서 때를 놓치면 꼬박 1년을 또 기다려야만 볼 수 있다. 단풍이 시들기 전에 서둘러 가까운 숲으로 단풍을 찾아 나설 일이다. 제아무리 삶이 팍팍할지라도 단풍을 보며 눈 호강을 즐기는 정도의 여유는 부려도 좋지 않을까 싶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