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사랑의 뜨거움이/ 불볕더위의 여름과 같을까/ 여름 속에 가만히 실눈 뜨고/ 나를 내려다보던 가을이 속삭인다// 불볕처럼 타오르던 사랑도/ 끝내는 서늘하고/ 담담한 바람이 되어야 한다고/ 눈먼 열정에서 풀려나야/ 무엇이든 제대로 볼 수 있고// 욕심을 버려야 참으로 맑고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어서 바람 부는 가을 숲으로/ 들어가자고 한다.”-이해인의 ‘바람 부는 가을 숲으로 가자’ 전문
시인의 말처럼 낙엽 쌓인 가을 숲길에 서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뜨겁던 여름과 사랑에 눈멀었던 열정의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가지를 떠난 이파리가 바닥으로 내려앉아 나무를 바라보듯 지나온 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낙엽은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와 계곡의 돌과 작은 오솔길 어디에나 쌓여 있다. 나무 위에서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 반짝이던 때와 달리 지상으로 내려앉은 낙엽들은 색깔마저 비슷해져서 서로 몸을 기대며 조용히 대지를 덮고 있다. 구르몽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고,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고 노래했으나 낙엽은 버림받은 게 아니다. 봄날의 새잎도, 여름날의 무성했던 초록 잎도, 가을의 고운 단풍도 낙엽으로 가는 과정이었던 것처럼 낙엽 또한 대지로 돌아가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것이 내려오기 위한 과정인 것처럼. 지상으로 내려앉은 낙엽들은 거름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고 다시 나무를 키워 숲을 푸르게 할 것이다.
‘해 아래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낙엽만이 아니라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크게 보면 대자연의 순환 속, 그 어느 과정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허튼 순간이란 없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역시 바닥을 뒹구는 낙엽처럼 쓸쓸한 기운이 가득한 만추의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미치면 허투루 살았던 시간이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하산길에 바위에 걸터앉아 다리쉼을 하며 계곡 건너편의 숲을 보니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낙엽이 비처럼 쏟아진다. 무덤가엔 흰 억새꽃이 석양을 받아 은빛으로 눈이 부셨다. 가을엔 반짝이는 것들도 눈물겹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바람도 길다 했던가. 가을이 병처럼 깊었으니 곧 겨울이 들이닥칠 것이다. 겨울 또한 봄으로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추운 겨울을 어찌 견딜까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가슴을 헤집는 서늘한 한기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낙엽들이 서로 몸을 포개며 찬 바람을 견디듯 가까운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고 서로 등 토닥이며 추운 겨울을 건너야겠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