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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환율 발작과 달러 기축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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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환율 발작과 달러 기축통화

미국 달러 환율/사진=뉴시스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달러 환율/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폐기 후 원/달러 환율이 장 중 1,440원대에 바짝 다가서고 코스피 지수가 2,360대로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국회에서 탄핵안 표결이 국민의힘 의원들 불참으로 무산되면서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국 불안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자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주가가 연중 최저점까지 밀려났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17.8원 뛴 1,437.0을 기록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지난 2022년 10월 24일(1,439.7원) 이후 약 2년 1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환율은 6.8원 상승한 1,426.0원에 개장한 뒤 점차 상승 폭을 키워 오전 11시 41분께 1,438.3원까지 치솟았다.
윤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극도의 혼란이 빚어진 데 이어 대통령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되자 금융시장은 최대 악재인 불확실성이 증폭됐다고 보고 있다.

야당은 가결될 때까지 매주 탄핵안을 상정하겠다고 예고했으며, 이번 주에도 탄핵안을 발의하고 14일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뉴욕증시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장기화 여부가 금융시장 변동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연이어 관세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추수감사절 직전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기존 관세 플러스 10%포인트의 추가 관세를 예고한 데 이어 이번에는 브릭스 국가들을 대상으로 100%의 보복관세를 예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브릭스 국가들이 달러화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생각은 이제 끝났다"라면서 "이들 국가는 새로운 브릭스 통화를 만들거나 강력한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러지 않으면 100% 관세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훌륭한 미국 경제와 작별을 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브릭스 국가가 국제 무역에서 미국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없으며, 이를 시도하는 모든 국가는 미국에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올해 대선 기간 내내 "미국 달러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유지할 것"이라면서, 집권할 경우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 이에 동조하는 나라들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브릭스는 영어로 BRICs 또는 BRICS로 표기한다.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 5개국의 머리글자를 따서 부르는 명칭이다. 21세기에 들어 기존의 경제강국인 선진국 지역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면적과 인구 규모가 큰 5개국이 부상함에 따라 붙여진 이머징 마켓의 이름이다. 처음에는 4개국만 묶은 BRICs로 시작했고, 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정식으로 참가하면서 BRICS로 변모했다.

브릭스란 말은 골드만삭스에서 처음 만들었다. 2006년 브릭스로 언급된 국가의 외무부 장관들끼리 미국 뉴욕에서 만나 회의체에 대한 구상을 의논했다. 2009년에 상설기구화돼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2023년 8월 24일 남아공에서 열린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6개국이 추가로 가입하는 것이 결정돼 총 11개국이 될 예정이었으나 아르헨티나는 정권교체 후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가 가입을 거부했고, 사우디의 경우 아직 가입을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다.

브릭스 회원국들은 탈(脫)달러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역내 통화 활용을 늘리는 식으로 달러화 비중을 낮추는 동시에 브릭스 국가 간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와 디지털 기축통화 구상 등을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도 탈달러에 적극적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표시 해외자산을 동결한 바 있다. 러시아 주요 은행들을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등의 제재를 가했다. 이를 두고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한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브릭스 국가들 간 거래에서 달러 대신 중국 위안화나 러시아 루블화 등 브릭스 국가의 통화로 결제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해 놓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브릭스 국가들을 향해 달러 아닌 다른 통화로 결제하는 나라에 100%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한 것은 새로운 기축통화 창출 움직임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볼 수 있다.

경제학에서 국제 단위의 결제나 금융 거래의 기본이 되는 화폐를 기축통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화폐로서의 3대 기본 요소인 교환성과 유통성 그리고 가치저장성을 제한 없이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기축통화는 단순히 무역 거래에서 쓰이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통화 신뢰성이 높으면서 충분한 유통량을 지녀야 그때 비로소 기축통화라 할 수 있다. 기축통화가 있으면 외국과의 거래 시 자국 화폐나 상대국 화폐가 아닌 기축통화로 결제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상당히 편리하다. 번거롭게 상대국에 자국의 화폐를 받을 것을 요구하거나 상대국의 화폐를 따로 마련해서 지불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기축통화는 특히 다자간 무역에서 결제 효율이 극대화된다. 수출국에게서 받은 기축통화를 수입국에 바로 지불하면 거래마다 거액을 환전할 필요가 없어진다. 인류의 역사를 상고해볼 때 국력이 가장 센 최강대국의 통화가 주변 국가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면서 기축통화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근대적 의미에서 첫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이었다. 그 이전에도 프랑스 프랑이나 두카트, 멕시코 은화 등도 통용되고 있었으나 강대국의 위력을 빌린 것이거나 해당 화폐에 귀금속이 많이 들어가서 그 가치로 통용되는 것이므로 오늘날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기축통화와는 성격이 좀 달랐다. 영국 파운드는 17세기 이후부터 기축통화로 사용돼 왔으나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운드화를 마구 찍어내다가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츰 잃기 시작했다. 그 공백을 미국 달러가 치고 들어왔다. 이 시기를 경제학에서는 복수 기축통화 시대로 부른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영국 파운드화는 더욱 쇠잔했다. 결국 1944년에 와서 전승 연합국들이 브레턴우즈 협상에서 IMF 체제를 발족하면서 미국 달러를 유일한 기축통화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당시 이 회의에서 달러화의 기축통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금 1온스는 언제든지 35달러로 바꿔주기로 하는 이른바 금태환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미국은 그러나 닉슨 대통령 시절이던 1971년 금태환제도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기에 이른다. 베트남 전쟁을 치르면서 금 보유량이 급격히 줄어 더 이상 바꿔줄 금의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이 닉슨 쇼크로 인해 브레턴우즈 체제는 사실상 붕괴됐다.

이후 미국은 금태환을 대체하면서도 자국 달러의 교환가치를 그나마 안정적으로 보장할 각종 국제정치 및 경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위기를 극복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페트로-달러 메커니즘이다.
1974년 미국은 사우디와 담판을 벌여 원유 가격의 책정 단위 및 그 결제 화폐를 오로지 미국 달러로만 하기로 정하는 군사-경제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그 대가로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하는 거래였다. 페트로-달러 협정은 이듬해 OPEC 회원국 전체로 확대된다. 이 조치로 미국 달러의 위상은 다시 올라갔다. 달러화는 오늘날까지 기축통화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기축통화는 바로 미국의 힘이다. 미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파워가 기축통화에서 나온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이른바 트럼프의 MAGA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달러의 기축통화 유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트럼프가 브릭스 국가들을 상대로 100%의 관세폭탄을 예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축통화를 둘러싼 '쩐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