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은 한밤중에 충동적으로 계엄령을 발령한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트럼프 당선인의 모습을 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대통령에게는 없는 계엄령 발령 권한을 부러워하고 있을 수 있다. 또 한국 대통령이 6시간 만에 계엄령을 해제하는 ‘굴욕’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윤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말이다.
진보 성향의 케이블 뉴스 채널 MSNBC의 제임스 다우니 해설위원은 6일(현지 시각) “한국이 트럼프에게 경고장을 날렸다”면서 “민주당이 이끄는 야권의 용단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전 세계인이 눈을 뗄 수 없게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한 이후 철권통치를 감행할 때 미국의 민주당과 반트럼프 진영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한국의 사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계인 미국 CNN의 M. J. 리 기자는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적을 쫓는 데 군대를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던 인물로 그의 취임을 앞두고 미국인들이 한국 사태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분명히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여왔다”면서 “그가 취임 첫날에 독재자가 되겠다고 했고, 내부의 적에 군을 동원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고 짚었다. 미국에서는 주지사가 과거에 수십 번에 걸쳐 계엄령을 발동한 전례가 있으나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한 사례는 거의 없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당시 발동한 계엄령이 있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내란 주동’ 혐의로 탄핵 공세를 받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도 1·6 의회 난입 사건으로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았다. 지난 2022년 12월 19일 미 하원 조사특위는 최종 보고서에서 트럼프를 내란 선동 혐의로 형사 처벌할 것을 권고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2021년 1·6 의회 난입 사태를 부추겨 내란을 선동한 혐의로 트럼프에게 헌법 14조 3항을 적용해 대선후보 자격을 박탈하고, 대선 경선 투표용지에서 이름을 삭제하도록 했다. 그러나 보수파가 6대3의 비율로 다수를 차지한 연방 대법원은 올해 3월 4일 트럼프의 대선 경선 출마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윤 대통령이 탄핵 위기를 넘기면 내년부터 트럼프 당선인을 상대로 험난한 한·미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트럼프는 김정은 같은 스트롱 맨에게 약하고, 약한 지도자를 깡그리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계엄 사태로 백척간두에 선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을 상대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심지어 바이든 정부 당국자들도 지금 한국 정부 인사들을 잘 만나주지 않는다. 그러니 트럼프 측 인사와의 접촉은 언감생심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