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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반인륜적 행위까지 문화상대주의로 용납해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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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륜적 행위까지 문화상대주의로 용납해서는 안 돼”

[힐링마음산책(299)] 나의 문화와 다름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나?
인도 농부들이 더 나은 작물 가격을 요구하기 위해 뉴델리로 행진하는 날, 인도 펀자브주와 하리아나주 사이의 국경인 샴부에 모였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도 농부들이 더 나은 작물 가격을 요구하기 위해 뉴델리로 행진하는 날, 인도 펀자브주와 하리아나주 사이의 국경인 샴부에 모였다. 사진=로이터
과학기술과 통신의 발전으로 온 인류가 쉽게 왕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지구촌 시대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인도 북부의 한 마을에서 37년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7년 전 한 10대 여성이 산 채로 불에 태워지는 인도의 전통 의식(儀式)인 ‘사티(Sati)’가 진행됐다. 사티는 죽은 남편을 따라 아내도 불더미에 몸을 던지는 힌두교 의식이다. 겉으로는 ‘자발적으로’ 불더미에 몸을 던졌다고 하지만, 실상은 대부분 강제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당시 겨우 18살이었던 이 여성은 결혼생활을 고작 8개월 한 상태에서 전날 병으로 죽은 남편의 화장 예식에 몸을 던졌다. 그의 죽음을 놓고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는 주장과 "강요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이 지금까지 팽팽하게 맞섰다. 지난 10일 이 죽음과 관련해 기소된 45명 중 마지막 8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카스트 계급의 상층부에 속한 젊은 부인의 시댁은 37년 전 사티는 당시 며느리의 자발적인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그가 사티 의식에 따라, 결혼식 신부처럼 곱게 화장하고 마을의 사티 행렬을 이끌었고 남편의 시신이 놓인 장작더미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에 남편의 머리를 누이고 기도문을 외우며 죽음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현장을 방문한 기자들과 변호사, 여성단체 운동가들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목격담은 정반대였다. 심지어 그의 부모들도 처음엔 딸이 타의(他意)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그의 부모는 사위가 죽었고 그다음 날 딸도 불에 타 죽었다는 사실을 모두 신문을 보고 알았다. 시민단체들은 부모가 이런 주장을 번복하고 “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한 것은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 압력 탓이라고 말한다.
이후 작성된 2건의 현장 조사 보고서 내용은 끔찍했다. “아침에 남편 마알 싱의 시신이 병원에서 도착하고 마을에선 곧 사티 준비가 시작됐다. 아내 루프 콴와르는 눈치를 채고 들판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헛간에 웅크리고 숨어있다가 잡혔고, 집으로 끌려갔다…라지푸트족 청년들이 비틀거리는 루프 콴와르를 에워싸고 제단 위로 올렸다…콴와르의 입에선 거품이 나왔다(약에 취하게 했다는 뜻)…장작에 불이 붙자 콴와르는 빠져나오려 했지만, 몸 위의 통나무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청년들은 칼끝으로 계속 콴와르를 장작더미로 밀었다….” 한 목격자는 “용기와 희생으로 포장했지만, 콴와르의 죽음은 끔찍한 살인이었다”고 조사단에 말했다. 현장 조사 보고서가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살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뒤 37년 후 내려진 재판 결과는 관련된 사람 모두 무죄였다(조선일보 인터넷판, 2024.10.22.).

사티를 행한 18세의 과부가 자발적이었는지, 타율적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문화적 현상들이 지구촌 시대에는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이런 일견 기괴하기도 한 문화적 현상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도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되었다.

위에서 인도의 사티 문화를 비교적 소상히 소개한 이유는 자신과 다른 집단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이해하는 두 가지 상반되는 큰 입장이 있다. 하나는 ‘문화절대주의’고, 또 하나는 ‘문화상대주의’다. 문화절대주의는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이성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에서도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화절대주의의 큰 폐단은 ‘자문화중심주의(自文化中心主義)’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자문화중심주의는 자신이 속한 문화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자기 문화는 우수하고 다른 문화를 부정적으로 폄하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당시 제일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서구 중심의 세계관에 근거해 자신과 다른 문화는 열등한 문화로 치부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가치를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라고 혼동하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절대주의가 서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외래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전통문화를 폄하하는 경우에도 나타난다.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자기 세대의 문화와 가치관을 옳다고 믿고 다른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때에도 나타난다. 또는 자신이 믿는 특정 종교의 교리나 신조를 신성시하고, 다른 종교를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경우에도 잘 드러난다. 자신에게 옳다는 믿어지는 신념이나 신조를 절대화하고, 이와 다른 모든 것을 적대시하거나 사라져야 할 것으로 여기는 현상은 절대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문화상대주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는 있을 수 없으며 어떤 문화적 현상도 그 나름대로 옳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각 집단마다 문화가 다른 것은 환경과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고, 문화가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는 ‘한 집단이 환경에 가장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발달시킨 생활양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는 우열을 가릴 수 없고, 다만 상대적일 뿐이다. 인종(人種)에 우월이 없듯이 인류 각각이 만든 문화 또한 그 문화의 우월성을 얘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문화상대주의에서는 어느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보다 더 우월하다는 문화절대주의를 거부한다. 모든 문화는 고유한 환경에 대응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므로 그 나름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특정한 문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문화가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렇듯 문화상대주의는 각각의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지구촌 시대에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구촌 시대에는 여러 문화의 유입이 빈번히 일어나고, 따라서 다른 문화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문화상대주의가 중요시되고 있다. 또한 국제결혼 및 다문화 사회 속에서 기존의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생각으로 인한 사회적 편견 등 부정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소양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문화상대주의가 극단적으로 사용될 경우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도 상대적 관점에서 수용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난해한 주제를 제시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앞에서 자세하게 제시한 인도의 사티 같은 관습이다. 이외에도 아직도 행해지고 있는 ‘명예살인’이나 ‘여성할례’도 단지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까?

문화상대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사티와 더불어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예가 지금도 자행되는 ‘명예살인’이다. 명예살인은 일부 이슬람권 국가에서 순결을 잃은 여성이나 혼외정사 등을 벌인 여성을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버지나 오빠 등 가족 구성원이 죽이는 악습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이유가 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자행된다. 2021년 4월 이탈리아에서 18살 딸이 가족이 강요하는 정략결혼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살해 후 암매장했다가 1년여 만에 유해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이후 고향인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던 아버지가 체포되어 이탈리아로 송환됐다. 이 부모는 이탈리아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서울신문 인터넷판 2023.12.20.). 파키스탄에서는 명예살인을 방지하기 위해 ‘징역 25년 이상’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2016년에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자행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2018년 기준 인구수당 가장 많은 명예살인이 자행된 국가라고 한다. 파키스탄의 인권단체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 해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관련 사건은 316건에 달한다고 한다(SBS News, 2024.04.01). 이는 뿌리 깊은 문화적 관습이 법에 의거한 처벌만으로는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종교,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화 등과 같이 대부분의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다. 현대 국제 사회는 개인의 생명과 인권을 보편적 가치로 간주한다. 이런 가치는 특수한 집단이나 개인의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반인륜적 행위까지 문화의 상대성과 특수성을 방패 삼아 지속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사람의 생명까지 달려 있는 것은 조속히 금지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문화에는 다양한 측면이 혼재한다. 비록 사티나 명예살인의 전통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한 문화의 극히 일부분이다. 그리고 사티라는 문화 행위 안에는 복잡한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통합적으로 나타난 것이 사티일 뿐이다. 한 문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행위와 관련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그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 또한 비록 사티를 행했다고 해서 인도 문화 전체를, 그리고 명예살인을 했다고 해서 파키스탄 문화 전체를 야만적이거나 미개하다고 매도해서도 안 될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