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커피 원두, 코코아 등 주요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외식 물가 인상 우려도 현실화되고 있다. 은행권은 대출 규모를 축소하며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자영업자는 임금 결제를 미루거나 폐업에 내몰리고 있다.
고환율은 "경제의 무법자"로 불릴 만큼 전방위적 위협을 가한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환율 변동성 관리와 수출 경쟁력 제고에 집중하여 이 무법자와 싸워야 한다.
■고환율의 두 얼굴
환율과 수출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고환율은 자국 통화의 약세를 의미하며, 수출품의 외화 표시 가격을 낮춰 해외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저가 소비재는 수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고환율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한국처럼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환율 상승이 제조 원가를 높여 최종 수출품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또한 고환율은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국내 소비자 물가를 자극하고 소비 심리를 위축시킨다. 이는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외국 자본의 유출과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 경제적 타격 우려
2023년 초 원화가 1400원대를 기록하며 한국의 주요 수출 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일시적인 수출 실적 증가를 경험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며 수출이 다소 늘었다.
하지만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이 심화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2023년 동안 한국의 주요 수입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은 15% 이상 상승했으며, 철강과 석유화학 원자재 가격은 자동차 및 전자제품 생산 원가를 끌어올렸다.
국내 물가도 상승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소비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더욱 올랐다. 외화 지출이 필요한 여행, 유학 비용이 증가하며 국민의 경제 부담도 커졌다.
■2016년과 2024년의 비교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와 2024년 계엄령 발효 시기의 환율 상황을 비교해 보면, 2024년 환율 상승 폭이 훨씬 크고 원화 약세도 장기화되고 있다.
2016년에는 글로벌 경제가 점진적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2024년은 경기 둔화와 강달러 현상이 맞물려 한국 경제에 복합적인 부담을 더하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 역시 2024년이 더 심각하다.
2024년에는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상승, 내수 경제 위축, 수출 둔화가 동시에 발생하며 경제적 충격이 심화되고 있다. 과거 고환율이 단기적인 불안정 속에서 나타났다면, 2024년은 구조적 문제와 장기적 리스크가 결합된 경제적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소비 심리에 미치는 영향
정치적 불안정은 소비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이어졌던 2016~2017년 소비자심리지수(CSI)는 기준선 100을 밑돌았고, 민간소비 증가율은 2016년 4분기부터 1%대로 떨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 당시인 2004년에도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04년 1분기에 -0.5%로 하락했다가 서서히 회복됐다.
2024년의 소비 위축은 정치적 요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계엄령 사태로 인해 한국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한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고환율 시대의 생존 전략
고환율 시대의 핵심 과제는 외환시장 안정화를 통해 변동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금리 조정, 외환 보유고 활용 등을 통해 환율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들도 선물환 거래나 옵션 같은 금융 도구를 활용해 환율 변동 위험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효율 개선 및 자재 구매 다변화로 수입 비용을 줄여야 한다.
수출 시장 다변화도 필수적이다. 특정 지역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인 시장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다.
결국 고환율은 철저한 준비와 실행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그 해법의 중심에 서있다.
임광복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a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