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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韓 '87년 체제' 극복과 美 '제왕적 대통령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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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韓 '87년 체제' 극복과 美 '제왕적 대통령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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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과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조야(野)에서 ‘1987년 체제’ 극복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1987년 9차 개헌을 통해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도입됐다. 이후 37년째 이어져온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이제 윤 대통령 사태를 계기로 이 체제를 더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데 보수와 진보 진영이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승자독식의 폐해를 극복하고, 분권형 권력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이런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 출범과 겹친다. 트럼프는 한국과 정반대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그는 취임 전부터 마치 전제 군주처럼 군림하고 있다. 유사한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과 미국에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스매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1·5선거에서 공화당이 백악관에 이어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말 중간선거 전까지 폭주 기관차처럼 달릴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조성됐다. 그가 앞으로 2년 동안 속전속결로 자신이 중시하는 국정 어젠다를 거세게 밀어붙일 게 확실하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이후 미국 정계와 경제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트럼프는 경력과 무관한 충성파 일색으로 내각을 꾸렸다. 글로벌 빅테크 수장 등 기업인들은 앞다퉈 트럼프에게 구애의 손을 내밀고 있다.
트럼프와 대립했던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페이스북의 팩트체크 기능을 중단하면서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저커버그트럼프 1기에는 트럼프페이스북 계정을 없애는 등 대립각을 세웠었다. 저커버그와 팀 쿡 애플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 달러씩 기부한다.

글로벌 기업의 미국 투자도 쇄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10억 달러(약 1조4500원) 이상을 투자하는 기업에 인허가를 신속 처리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트럼프 2기 정부의 고관세 장벽에 대응하려고 미국에 수조원대를 투자해 제철소를 포함한 철강 산업 기지 조성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최대 부동산 프로젝트 개발사인 '다막 프로퍼티스'미국 전역에 새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는 데 최소 200억 달러(약 29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 IT·투자그룹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마사요시 손) 회장은 1000억 달러(약 145조3300억 원)를 투자해 트럼프 임기 동안 10만 개의 인공지능(AI) 관련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트럼프에게 직접 약속했다.

트럼프는 대외적으로는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해협을 손에 넣겠다며 신제국주의 액셀을 밟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라’는 트럼프의 조롱을 받으며 사임했다. 트럼프가 덴마크령 그린란드 편입을 시사하자 당사국인 덴마크와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면모를 보여왔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스트롱맨을 동경한다. 트럼프를 상대하려는 외국 지도자는 무엇보다 국내 지지 기반이 탄탄해야 한다.

한국이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권력 분점을 하더라도 새 지도자가 압도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트럼프와 맞상대할 수 있다. 트럼프 집권 2기에 계속되는 윤 대통령 탄핵 사태는 한국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대미 전략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