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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관세폭탄과 원달러 환율…일본은행 금리인상 "뉴욕증시 엔캐리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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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관세폭탄과 원달러 환율…일본은행 금리인상 "뉴욕증시 엔캐리청산"

미국 의회/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의회/사진=로이터
트럼프 2기가 시작된다. 관세 폭탄과 불법 이민자 추방 등으로 물가 불안이 야기되면서 달러 가치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인플레 때문에 연준 FOMC가 금리인하를 유보 또는 중단할 가능성이 커졌다. 뉴욕증시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시작 이후 연준 FOMC의 금리인상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이미 뉴욕 채권시장에서 국채금리는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연일 치솟고 있다. 미국의 국채금리 상승은 달러인덱스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달러의 강세는 가뜩이나 정국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는 원화 환율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28년 전인 1997년 10월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미국 뉴욕증시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강등했다는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당시 한국 경제는 한보그룹 부도와 기아 분규 사태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무디스가 한국에 신용등급 강등조치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예 국가신용등급이 없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용 베이스로 조달하는 자금의 비중이 높지 않았던 만큼 우리 스스로 신용평가를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평가는 90년대 초 선진국 클럽인 OECD 가입 논의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랬던 만큼 당시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신용평가라는 개념 자체가 별로 각인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금융 시장에서는 무디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무디스의 신용평가에서 일정 등급 이상의 점수를 받지 못하면 글로벌 자금에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신용평가 강등은 뉴욕증시에서 곧 “저승사자의 사망 통보”로 받아들여진다. 97년 10월 무디스가 한국의 등급을 내렸을 때 뉴욕증시와 외환시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현지 특파원들은 사태가 매우 급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해 서울 본사에 무디스 신용 강등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서울의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그까짓 무디스 신용등급 조정에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무디스라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인 만큼 특보 보도를 한 방송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워싱턴발 무디스 신용 강등 기사는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한국 경제의 근본은 든든하다”면서 무디스 경고를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한국의 이 같은 태연한 분위기와 달리 전 세계의 금융시장에서는 한국 쇼크로 비상이 걸렸다. 국제투자가들은 무디스의 신용 강등 소식이 나오자마자 주식과 통화 그리고 채권 등 한국 관련 금융상품에서 앞다투어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국가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외환보유액이다. 외환보유액이란 정부나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대외 지급준비자산을 말한다. 오늘날 IMF 체제에서 공인받고 있는 대표적인 대외 준비자산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와 금이다. 일본 엔화와 유럽 유로 그리고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네 등도 부분적으로 인정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원화는 아직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외환보유액만 충분하다면 어떠한 충격도 극복해낼 수 있다. 수출이 전면 중단되거나 해외로부터 자금 조달이 완전히 막히더라도 외환보유액만 있다면 국가가 부도나는 일은 없다.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공표되고 있었다. 당시 우리 경제의 교역 규모를 감안할 때 그 정도면 다른 나라의 도움이 없어도 최소한 2년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국 정부가 무디스의 경고에도 나름 느긋했던 것도 외환보유액이라는 실탄을 믿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통계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우리나라 단자와 종금사들은 국제금융 시장에서 금리차를 이용한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자금을 조달해와 고금리에 빌려주면서 상당한 중개차익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금리가 높은 태국과 말레이시아에 많은 돈을 빌려주면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1997년 초에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공교롭게도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이들은 빌려 간 돈을 못 갚겠다면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미 채무불이행 처리된 외화채권은 휴지와 다름없다. 우리 단자와 종금사는 그 사실을 정부에 즉각 신고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이미 사라진 외환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으로 추계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잘못된 통계만 믿고 특단의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무디스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뻥튀기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신용등급을 무려 여섯 번이나 연속으로 낮추었다. 실제로 금융당국이 현장 실사를 해보니 가용한 외화보유액이 겨우 39억 달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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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엔화/사진=로이터


원화 가치 하락은 외화보유액을 감소시키고 줄어든 외화보유액은 또 원화 가치를 폭락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97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외환보유액이 고갈되자 결국 항복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IMF에 구제금융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IMF에 손을 벌리면서 그들이 요구한 고금리의 금융통화 정책과 초고강도 긴축의 재정정책을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했다. 혹독한 강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국 경제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도산했다.

국제사회가 초기에 경고 메시지를 내기 시작할 때 적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안타까운 대목이 환율과 외환보유액 관리였다.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IMF 외환위기는 견실한 경제 펀더멘털 속에서 외환보유액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야기된 인재(人災)였다.

요즈음 원화 환율이 심상치 않다. IMF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에게는 '환율 트라우마'가 있다. 환율이 빠른 속도로 오르면 97년 IMF 사태 때처럼 국가 경제가 부도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수 있다. 97년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처음 떨어뜨릴 때 원화 환율이 달러당 1400원이었다. 그때부터 한국 경제계에서는 환율 1400원을 국가 부도로 가는 위험의 마지노선으로 보는 도그마가 형성되어 왔다. 작금 우리의 환율은 그 선을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금의 경제 상황과 주변 여건이 28년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을 감안할 때 환율 1400원을 무조건 부도 위기 시작의 신호탄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최근의 원화 환율 상승에는 '트럼프 효과'라는 돌발적 변수도 많이 반영된 만큼 1997년 경제위기의 재발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4000억 달러 상당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많다. 보유 외환이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그때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그렇다고 여유작작할 상황도 아니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현 단계에서 외환보유액에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의 외환 수급을 전제로 한 이론상의 계산일 뿐이다. 너도나도 달러를 빼내는 엑소더스 상황이 터지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 경제사회에서의 한국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다. 투자대상으로서 한국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